2015년 10월 15일 목요일
요한일서 2:18-27
“승리의 노래”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받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 요한일서 2:12-13
이 편지가 작성 될 당시 지금처럼 종이와 필기구가 손쉽게 구할 수 있던 시대가 아니었다. 구하기 어려웠던 값비싼 양피지에 기록하면서까지 구십의 노인이었던 사도 요한이 꼭 남기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
편지를 쓰는 목적을 누차에 걸쳐 분명하게 밝혔는데 첫째는 사귐과 누림이었다.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인격적인 교제였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들에게 충만한 기쁨이라고 하셨다. 두 번째는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함이라고 하셨다. 죄의 자리에서 내려와 해야 할 일을 말씀하셨는데, ‘사랑하라’고 하셨다. 사랑의 본질은 새로운 계명이 아니라 이미 구약에 기록된 말씀임을 재차 일깨우셨다.
오늘 세 번에 걸쳐 편지를 쓰는 목적을 말씀하셨다. 용서 받은 자였다. 태초부터 계신 예수님을 아는 자들이었다. 이긴 자들이었다. ‘승리의 노래’였다. 그리고 편지를 받는 독자들을 부를 때, ‘사랑하는 자들’이라고 하셨고 또는 ‘자녀들아’라고 부르셨다. 때로는 친근하게 ‘아이들아’ 또는 ‘청년들아’라고도 부르셨는데 독자의 다양성을 염두에 둔 편지였다.
사분오열된 한국교단을 바라보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옳고 그름을 떠나 다양한 목소리를 가진 모임들이지만 그러나 ‘예수 안에서 한 가정’이라는 사실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기에 여러 갈래의 모임이 주는 다양함이 오히려 위로가 된다.
오늘 사도 요한은 이러한 각계각층의 다양한 목소리를 가진 사람들을 향해서 노구를 이끌고 편지를 쓰고 있는 것이다. 그 말씀의 요지는 예고된 ‘적그리스도’의 출현에 대해서 그것을 감별하고 엄중하게 대처할 것을 경고 하고 있다.
사도 요한이 처음 예수를 만났을 때, 그는 노동자였고 어부였다. 요한은 처음 세례 요한의 제자였으나, 갈릴리해변에서 아버지와 형제 야고보와 같이 배에서 그물을 깁고 있을 때 예수를 만났다. 그때 예수께서 야고보와 요한에게 "나를 따라 오너라"라고 부르시니 그들 형제는 즉시 배와 부친을 버려둔 채 예수님을 따랐다.
예수께서 갈릴리 전도를 시작하자 요한은 주님과 같이 동행했으며, 12제자 중 한 사람으로 선택되었다. 그들 중에서도 가장 예수의 사랑을 받았으며, 베드로와 야고보와 더불어 항상 예수님 곁에 있었다. 야이로의 딸 사건, 변화산 사건,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 등, 그는 특별한 때에 주님 옆에 있는 것이 허락되었다. 또 최후의 만찬 준비 명령을 받은 것도, 그 자리에서 예수님의 가슴에 기대었던 것도, 십자가상에서 최후의 순간 주님께로부터 어머니 마리아를 부탁받은 것도 이 요한이었다.
그는 요한일서 1:1절에서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며 주님의 공생애 현장에서 직접 자신의 체험적인 신앙에 대해서 고백을 시작했다.
오늘 적그리스도의 실체를 해부하면서 거짓말하는 자를 거론하신다.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냐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냐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니라고 선언하신다.
헛소리 말라는 것이다. 내가 두 눈 똑똑히 뜨고 보았다는 것이다. 사도 요한은 주님을 그냥 듣고 아는 정도가 아니라 분명하게 만난 목격자로서 ‘승리의 노래’를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