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13일 화요일
요한일서 2:1-6
“만일2”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요한일서 2:1
사도 요한이 말년에 기록한 요한일서는 그가 주님을 만나고 섬겼던 일생을 총정리한 편지이다. 그가 유언처럼 기록한 오늘 본문 1절에 ‘나의 자녀들아’라고 호칭하며 부르는 것만으로도 자신을 통해 주님을 만난 성도들을 향한 뜨거운 관심과 사랑을 엿볼 수 있다. 그가 오늘 편지를 쓰는 목적을 밝히고 있는데 ‘죄를 범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다.
당시, 교회가 형성된 지 일천한 시기이기에 여러 가지 신학이 범람하고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 받은 자는 어떠한 죄도 용서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문란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식의 성도들이 있었다. 지금으로 말하면 구원파 같은 자들이 교회에 스며있었다.
한 번의 회개로 구원이 이루어졌다며 성화의 과정을 생략해버린 우를 범하는 자들에게 ‘사귐의 방법’ 중 하나가 바로 회개임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성도가 죄를 질 때마다 중보자이신 주님께서 기도하신다. 다시 말하면 우리들의 범죄에 대해서 주님은 여전히 십자가를 지셔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구원 받은 자들이 살아가는 방법이 아니다.
한 번 자식은 영원한 자식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신다. ‘패륜아’로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정상적인 자녀의 삶’을 살아갈 것인지를 선택하라고 하신다.
분명한 것은 구원은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주시는 ‘은혜’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삶은 여전히 주님과 함께 손잡고 걸어가는 먼 여정임을 잊지 말아야한다. 때로는 실패하거나 낙심할 수 있다. 그러나 변함없이 그 실패의 현장을 떠나시지 않고 함께 하고 계신 주님을 믿어야만 한다.
사도 요한은 거두절미 하셨다. 한 마디로 말씀하셨다. 정상적인 자녀의 삶으로 돌아올 것을 촉구하고 계신다.
“그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 하는 자니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요한일서 2:4
하나님의 자녀로 초대받은 자는 반드시 그에 맞는 예복을 입어야만 한다. 거룩한 길, 좁은 길이다. 5절에서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로 시작되는 성화로의 초청은 성도가 걸어가야 할 ‘예외 없음’을 선언하고 계신다.
성도의 삶에도 ‘실수’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실패’는 없다가 정답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을 이끌어 가시는 분이 주님이시기 때문이다.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요한일서 2:6
딸내미가 시집을 가고 손자가 태어났다. 고병희가 이 땅에 태어나 우리와 처음 대면하는 날을 잊을 수가 없다. 지 애비와 너무도 닮은꼴이라서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요즘 또 한 번 놀라는 것은 잠자는 모습까지 똑같다는 것이다. 여기서 진리를 배운다. 자식이 부모를 닮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고백이 분명하다면 우리의 삶이 아버지를 닮아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하겠다.
오늘 하루 주님이 걸어가신 발자취를 따라 가기를 소망한다. 좁은 길을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