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년 전 태어난 지 3개월이 지나서 저는 캐나다 오타와에 있는 한 장로교회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출애굽기 19장 1절에 “이스라엘 자손이 애급 땅을 떠난 지 삼 개월이 되던 날 그들이 시내 광야에
이르니라”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뉴킹제임스버전 성경)
제가 7월에 태어났으니까 우리들교회에서 10월에 받는 세례는 저의 첫 세례를 기념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을 만나 언약을 세우러 가는 이스라엘 백성들과도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백퍼센트 죄인이고 나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는 존재이므로 예수 안에서 나의
죄를 회개하고 새로운 삶을 찾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 확실하게 볼 수 있는 나의 죄는 나 자신을 하나님으로부터 멀리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내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린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나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이 아닌
옆에 있는 작은 신을 섬겨왔었던 것입니다.
나는 내가 보고 싶어 하지 않는 것들에는 눈 감아 버리고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다고 믿으며
나 스스로 일을 계획하고 꾸려나갈 수 있는 (하나님의 인도함이 필요없는) 자립적인 삶의
종으로 살았습니다.
그 근본에 있어서 내 삶에 있어서 하나님을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몸 된 교회의 세례를 받은 일원으로서 하나님에게 순종적이지도 신실하지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나의 인생에서 어느 누구도 진심으로 책임지지를 않았습니다.
부모님도, 아내도 아이들과 친구들 어느 누구도 타인을 돌보거나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믿는 사람으로 당연히 행해야 하는 것임에도 말입니다. 저는 이기적이고 스스로를 우상으로
또 지식의 우상을 만들고 그리고 그것들은 나를 욕망으로 이끌었습니다.
어머니는 저를 편애하셨습니다.
나는 어머니가 무엇을 하는지 알고 있었고 표면적으로는 못마땅하게 여겼지만 사실 마음속에서는
나를 왕자님으로 대하는 어머니의 태도를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어디에 가든지 저는 특별대우와 사랑을 원했습니다.
‘별 인생이 없다‘는 담임목사님 말씀에 머리로는 동의했지만 마음속에서는 특별한 인생을 꿈꾸고
있습니다. 그리고 파산해서 YMCA 시설에서 지내던 시절에 저는 내가 욕망하던 것의 실체를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애급에서 430년을 종으로 살면서 자신의 역사를 알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성장한 이후에) 세례도 받지 않고서 어떻게 내가 캐나다 오타와에 있는
교회에서 리더가 되었으며 우리들교회에서 목자가 될 수 있었을까요?
왜 저는 세례를 받는 것을 피했을까요?
책임에 대한 두려움 때문입니다.
나 자신의 믿음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일이 두려웠습니다.
스스로는 무서워 모세에게 자신들을 위해서 대신 하나님께 말해 달라고 부탁하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은 모습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위해서 책임 져주기를 바랐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왕자님이기 때문입니다.
세례나 입교 의식 없이 기독교인이 되는 것은 마치 결혼식을 올리지 않고 아내와 결혼을 했다고
말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제가 바로 그랬습니다.
제 딸 테스가 둘이서 함께 동거하기는 했지만 결혼식도 올리지 않은 상태에서 태어났습니다.
목사님의 9월 30일 수요설교 말씀에서 홍해를 건너봐야 구원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이번에 세례를 받는 것은 이제 내 앞에 놓인 홍해를 건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나안땅으로의 구원을 위해서 지름길을 허락하지 않으시고 내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고
아무도 대신 해 줄 수 없는 위기의 사건들을 통해서 광야로의 긴 여정으로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위기를 경고하는 전령사로 딸 테스를 사용하셨습니다.
딸 테스가 저와 함께 석 달 동안 이 곳에 있으면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세례를 받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저의 절름발이 신앙 때문에, 예수님의 사랑의 복음을 그녀에게 전하지 못했습니다.
사랑이 아닌 죄만 강조했던 것 같습니다.
딸을 통해서 하나님은 나의 믿음의 구멍을 보여 주셨습니다.
제가 제어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딸을 변화시키기 위한 힘이 저에게는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세례를 통해서 저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나는 하지 않았던 회개와 구원 그리고 기독교인으로써 책임 있는 삶을 사는 것과 같은 일들을
딸아이는 받아들이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딸이 죄책감을 느끼고 두려움에 떨게 만들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나에 대해서 딸은 크게 놀랐을 것입니다. 그리고 딸이 내가 바라던 대로 반응을 보여주지 않자
화가 났습니다. 불같은 화가 아니라 화나지 않은 척 하지만 속에서 올라오는 감정이 일어 났습니다.
사람들이 화가 났을 때 아닌 척하는 그런 것 말입니다.
이제 홍해 바닷물은 나의 좌우에 벽이 되었습니다(출애굽기 14:22)
세례를 받음으로써 이제 나의 구속사가 이해되기 시작할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과 저 자신의 거리를 두고 있었습니다.
책임질 일이 있을 때 저는 책임질 필요가 없는 왕자님이 되고 싶었습니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도망치려 했습니다. 꼭 해결할 필요가 있는 어떤 일에 얽히는 것을
원치 않을 때면 분명히 보이는 것에도 눈을 감아 버렸고 절대로 돌아오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그 자리를 떠 버리곤 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지쳐갔습니다.
저는 지식의 세계로 도피했고 많은 책들을 읽어가면서 새로운 삶의 능력들을 습득하고자 했습니다.
저의 적용은 사랑으로 딸 테스를 받아들이고 즐거운 마음으로 그녀와 큐티말씀을 나누고 그리고
내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매일 아침 드리며 그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