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10일 토요일
요한일서 1:1-4
“사귐과 누림”
하나님 말씀을 몇 년째 묵상하면서 잃어버렸던 시간을 다시 찾고 있다. 인생을 다시 산다는 말이다. 말씀의 구석구석을 살피는 일이 일상이 되자, 또 다른 기쁨이 샘솟는다. 마음에 와 닿는 성경구절을 암송하며 좋아하는 말씀에만 주목했던 지난날의 무미건조한 신앙생활에서, 꾸준한 Q.T 생활을 통하여 말씀의 편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동떨어졌던 구약과 신약이 이어졌다. 강물이 모여 바다가 되듯 말씀이 하나가 되었다. 여기에 감격이 있고 기쁨이 넘친다. 통쾌함은 덤이다. 말씀에 젖어 손뼉치고, 때로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하늘을 보면서 흥분을 이기지 못했던 행복한 시간이었다.
어제까지 이사야 묵상 1부를 마치고 오늘부터 신약의 마무리라고 할 수 있는 요한일서를 주님과 함께 산책하고자 한다. 수천 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당시의 시대상을 살피고 주님의 발자취를 더듬는 것이 일상이 된다. 지고의 세월을 넘나들며 주님이 걸어가신 길을 따라가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
오늘은 수천 년을 넘어서 이 세상이 존재하기 전 시간, 영원이라고 표현된 이 기적의 현장에 초대한다. 요한복음의 저자이기도 한 사도요한은 동일하게 ‘태초’라는 시간을 언급하면서 말씀을 시작하신다.
눈에 보이는 만물이 조성되기 전 그분이 계셨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요일 1:1
이 편지를 쓸 당시 요한의 나이가 90세쯤이라고 하니 지금 수명으로도 천수를 다하였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는 뒷방 늙은이처럼 뒤로 물러나 있지 않았다. 식지 않은 복음에 대한 열정으로 편지를 쓰고 있다. 다시 말하면 전도를 쉬지 않았다. 그가 살아가는 그리고 살아있는 이유였다.
그는 체험적인 신앙을 가진 자였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만났고 삼년간 동숙했고 그 품에 안기기도 했다. 유일하게 순교하지 않은 제자였던 그는 끝까지 복음을 놓지 않았다. 놓을 수가 없었다. 그가 오늘 그 증언자로서 연단에 선 것이다.
그는 편지를 쓰는 목적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는데, 그 첫 번째가 사귐이다.
그리고 사귐의 결과는 누림으로 완성된다. 교회이다.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요한일서 1:3
사귐의 본질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고 하셨다. ‘더불어’라는 또 다른 말 ‘함께’는 창조주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일로 시작된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을 부르시는 주님의 초청이시다. 부르심으로 시작된 이 축복은 ‘사귐과 누림’으로서 완성된다. 부르심에 응답하는 자에게 주시는 ‘쉼의 세계’이다. 이것이 임마누엘의 축복이요 하나님 나라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태복음 1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