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9일 금요일
이사야 39:1-8
“오두방정”
신흥강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바벨론 왕으로부터 사신이 당도했다. 히스기야의 회복을 축하한다는 명목이었다. 친서와 예물을 받아든 히스기야는 기쁨을 이기지 못하고 그들에게 보물창고와 무기고를 다 보여주고 말았다. 이 무슨 경거망동이란 말인가?
적군에게 자신의 속살을 모두 보여주고 만 것이다. 죽을병에서 회복된 후 히스기야에게 다가온 시험은 ‘자만’이었다. ‘선 줄로 알거든 넘어질까 조심하라’는 말씀을 잊어버린 것이다.
바벨론 사신 앞에서 히스기야는 자신의 병을 고치신 하나님을 자랑했어야만 했다. 한 인생을 살리시기 위해서 태양을 십도나 뒤로 물러나게 하신 우주의 왕이신 하나님을 노래했어야만 했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가진 것을 자랑했다.
당시 바벨론은 앗수르에 의해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웃나라와 반 앗수르 동맹을 맺기 위해서 파견한 이유 있는 사절단이었다. 이때, 아마도 히스기야는 자신이 가진 것을 자랑함으로서 군사력과 경제력이 바벨론과 대등한 관계임을 알리려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히스기야의 행동을 하나님께서는 교만이라고 못 박고 계신다.
1,500km나 떨어진 바벨론이 당시의 외교적 상황을 살피기 위해서 이웃나라의 소식을 이처럼 수집하고 있었음에도 히스기야는 눈앞만 바라보는 근시안적인 외교정책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지도자의 태도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멸망과 환란을 경고했음에도 그는 기도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생전에 잘 먹고 잘살면 된다는 안이한 태도를 취한다.
여기에서 한국교회가 가져야할 분명한 태도를 발견하게 된다. 천만의 성도를 자랑하고 있지만 주일학교의 현실은 암담하기만 하다. 불투명한 한국교회의 미래가 분명히 눈앞에 보임에도 현실에 안주한다면 히스기야와 별다를 바 없는 미래를 향하여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위기의 순간에 늘 기도하였던 히스기야의 모습은 분명 아니었다. 여기서 히스기야의 한계를 보게 된다. 다윗 이래 가장 신실하였던 왕이었음에도 그 역시 별수 없는 인간인 것을 깨닫게 된다.
이사야가 한 인생의 공과를 이처럼 가감 없이 기록하고 있는 것은 ‘조심하라, 깨어있으라’는 경성의 의미와 함께 인간은 믿지 말라는 또 다른 음성이시다.
내년 총선을 위해서 정치권이 이해득실을 따라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자신들이 이 나라를 위한 대안이라고 소리칠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들에게서 답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유일한 대안은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는 ‘좁은 길’이다.
선교도 중요하고 교회증축도 해야 할 일이지만 가장 시급한 우선순위는 미래를 위한 유일한 대안, 주일학교를 다시 세우는 일이다. 주일학교 교사 양성과 함께 재교육이 실시되고 교회의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만 할 것이다.
‘우리 자녀와 다음세대를 위하여 나와 우리 교회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를 진지하게 고민하며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