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오늘은 예닮삶 다섯 번째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를 옮깁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저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쫓으니라.>(마가복음 10:52)
어느 날 예수님이 여리고에 있었는데 얼마 있었는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여리고를 나가실 때에 길목에 디메오의 아들인 맹인 바디메오가 길가에 앉아서 구걸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도대체 누가 지나가는데 이 많은 사람들이 음직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야단을 맞을수록 더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저를 부르라 하시니 저희가 그 소경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너를 부르신다 하매
소경이 겉옷을 내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갔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랐습니다.
누가복음 18장 35절에서 43절까지에 동일한 사건이 나옵니다.
이름이 나타나지 않았지만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인지 들어오실 때인지를 잘 모르겠습니다.
마태복음에는 나가실 때로 누가복음에는 들어오실 때로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쉬운 예로 제주에는 신제주가 있고 구제주가 있습니다.
신제주쪽에서는 나가는 것이 맞고 구제주쪽에서는 들어오는 것과 같습니다.
마태는 십자가 위에서 네가 그리스도이거든 이라고 표현하였고 누가는 당신의 나라에 들어가거든 이라고 표현되어있습니다,
두 행악 자는 공범으로 재판을 받고 있었지만 한 사람은 십자가상에서 회개를 하였고 다는 한 사람은 저주를 하였습니다.
한 사람은 십자가 위에서 회개를 하였습니다.
맹인이 이러한 일을 행하였음이 결코 쉽지 만은 않았습니다,
무리들이 잠잠하라고 하였습니다. 너 왜 짖어대 병(신) (새)끼라고 속된 말로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더 높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 사람 안에는 맹인이라는 내부적인 장애가 있었고 외부적인 다른 사람들의 장애도 있었습니다,
몽골 사람들은 세계적으로 눈이 좋아서 시력이 3.0정도라고 합니다.
그러니 어두움 속에서는 볼 수 없고 강렬한 햇빛 속에서는 보지 못합니다,
가까이 가서 보지 않으면 속눈썹을 보지 못합니다.
저 같은 경우에 한글은 문안하게 하고 히브리어는 더듬더듬하고 헬라어는 조금 합니다.
그렇다고 내가 세계의 사람들의 하는 말을 다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못하는 말이 많이 있습니다.
못 읽는 말이 많다는 것이 소경이 아니겠습니까?
가보지 못한 나라에 대하여 알지 못하는 것도 소경이 아니겠습니까?
바디메오가 알았던 3가지를 보겠습니다.
예수님을 제대로 알았습니다.
나사렛이란 표현을 보시면 알게 됩니다.
예수님은 헤롯을 피해 고향인 베들레헴을 떠나 나사렛에서 살았습니다.
나사렛이란 말이 시골뜨기, 촌놈이라고 불리어지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46 나다나엘이 가로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가로되 와 보라 하니라.>
그 참빗으로 오신 메시야를 만났습니다.
유명한 사람들 중 80%이상이 시골출신입니다.
도시에서 자란 사람 들 중에는 훌륭한 사람들이 적습니다.
저는 유명하지는 않지만 시골출신입니다. ^^^
바디메오는 수천 년 동안 기다리고 기다렸던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님을 알았습니다.
2. 나를 알았습니다.
그 자신이 나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하였습니다.
아픈 데를 알면 고침을 받을 수 있는 확률이 높습니다.
몇 년 전에 췌장암 말기인 장로님을 예배를 마치고 가면서 만났습니다.
저는 장로님은 치유될 것이라고 선포를 하였습니다.
추석 전에 수술을 받았고 지금도 살아계십니다.
김장환 목사님 사모님이 다발성 골수암에 걸렸습니다.
한국 사람들에게는 안 걸리는 희귀병입니다.
가끔씩은 어려운 사람들을 보고 눈물이 글썽이는 것을 보았지만 거기서 김장환 목사님이 울면서 기도하는 것을
처음 보았습니다.
지금은 병이 나아서 5년이 지났으므로 조심할 뿐입니다.
문제를 알아야 고침을 받습니다.
3. 나를 불쌍히 여겨주실 분이 주님이심을 알았습니다.
제자들이 병을 못 고쳐주었지만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없다고 하시면서 고쳐주셨습니다,
주님이 어떠한 병도 나을 수 있는 분이심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이 여리고를 지나가실 때 깡통을 들고 보리박스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육신의 안목이 열리지며 영의 보는 눈이 열려지시기를 기도합니다.
여러분은 눈 뜨기를 바랍니까?
돈 한 뭉치를 주는 것을 바랍니까?
한 10억쯤 준다면 무슨 일을 하겠습니까?
아침저녁으로 일찍 일어나고 늦게 일하는 것이 깡통 채우는 것이 아닌지요?
성도라면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채우는 일을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아파트 평수 늘리는 것, 좋은 직장을 갖는 것, 직장에서 잘 되는 것 등이 깡통을 채우는 것입니다.
그것보다도 더 하나님의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최희준은 인생을 나그네 길이라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다 놓고 가야할 것들을 위하여 우리는 살고 있지는 않은지요?
내 안에도 내 밖에도 적은 있습니다.
주여! 나의 영안이 열리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눈을 열어 주님의 기이한 것들을 보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