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7일 수요일
이사야 37:21-38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으로”
앗수르 왕 산헤립은 주전 722년에 북왕국 이스라엘을 함락시킨 후 유다를 침입하여 거의 모든 성읍을 탈취하였다. 마지막 남은 예루살렘을 함락시키려 랍사게를 파견했다. 그는 심리전에 능통한 자였다. 유대방언으로 큰 목소리로 백성과 히스기야를 이간질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을 조롱하였다.
이러한 내용을 기록한 산헤립의 협박편지를 펼쳐놓고 히스기야는 기도하였다. 그동안 조공을 바치면서 산헤립의 환심을 살려고 했지만 그들의 과중한 세금에 중과부적이었던 히스기야는 항전을 결의하였다. 풍전등화, 백척간두에서 그는 오늘 문제의 중심에 서있었다. 그는 고뇌하였다. 자신의 결정이 예루살렘 거민의 모두의 목숨이 달린 일이었기 때문이다. 위기의 순간에 그는 하나님께 엎드렸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을 부르시는 주님께 나아갔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통해 그 답신을 보내셨다. 오늘 본문이다.
“네가 어찌하여 듣지 못하였느냐 이 일들은 내가 ‘태초’부터 행한 바요 상고부터 정한 바로서” 이사야 37:26a
먼저 산헤립의 교만을 지적하셨다. 앗수르에게 주어진 이 세상 권력은 이미 창세전에 하나님의 계획하심이었다고 하신다. 갈피를 잡을 수조차 없는 하나님의 넓고 깊으심이었다. 인간의 머리로는 감히 가늠할 수조차 없는 하나님이시다.
조금만 귀를 기울이고 ’태초‘란 단어를 주목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인생의 연약함과 시간의 창조자이신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히스기야와 예루살렘 거민은 하나님을 찾았으나 하나님의 도우심이 늦어지자 그들의 마음이 녹아들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과연 계신가?’라는 의문이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한 번도 그들에게서 시선을 거두신 적이 없으셨다. 졸며 주무시지 않는 절대적 관심으로 당신의 백성을 바라보고 계신다. 이사야는 이러한 하나님의 모습을 단 한마디로 요약하고 있다.
‘하나님의 열심’이라고 했다.
“이는 남은 자가 예루살렘에서 나오며 피하는 자가 시온 산에서 나올 것임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이다.” 이사야 37:32
오늘도 마귀는 쉴 새 없이 산헤립의 편지를 우리에게 날려 보낸다. 그것이 건강을 위협하는 질병일 수도 있고, 가정을 뒤흔드는 어려움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성도는 어떤 환경가운데 있을지라도 기도하는 자이다. 히스기야는 산헤립의 편지를 펴놓고 조목조목 기도하였다. 즉, 구체적으로 기도하였다는 말이다.
이러한 히스기야의 기도에 하나님께서는 신실하게 응답하셨다. 이사야를 통해 답장을 보내셨다. 만군의 하나님의 열심으로 일하신다고 하셨다. 하루아침에 앗수르 대군 십팔만 오천인을 몰살 시키셨다.
“여호와의 사자가 나가서 앗수르 진중에서 십팔만 오천인을 쳤으므로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본즉 시체뿐이라.” 이사야 37:22
절대 권력자처럼 보인 산헤립은 하나님의 손에 들린 몽둥이에 불과하였다. 이스라엘 백성의 남은 자를 찾으시기 위한 하나님의 열심이었다. 오늘 내게 다가오는 어려움이 하나님의 사랑의 회초리인 것을 깨달을 수만 있다면 그는 행복자이다. 그리고 그 어려움 앞에서 쉬지 않고 기도하는 자는 행복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