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 25일 금요일
이사야 32:9-14
“깨어 있으라”
우리는 고도의 정보화 시대를 살아간다. 온 세계가 실핏줄처럼 인터넷으로 연결되어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고와 사건들이 실시간으로 정보가 오가는 시대이다.
그러나 바로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남북대치 상태에 대해서 도외시 한 채, 딴 나라 이야기처럼 먹고 마시는 일에 열중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만 한다.
1994년 3월 북한의 박영수가 “서울 불바다” 운운하며 겁주던 시절에는 사재기 열풍이 불었다. 곧 전쟁이 벌어질 듯 모든 국민들이 염려하였다. 그에 비해 연평도 포격사건, 목함 지뢰 도발에도 별다른 동요가 없었다. 휴전선에서 일어나고 있는 크고 작은 도발과 전쟁의 위협 속에서도 우리 국민들은 의연했다. 그러나 만일 국민들의 이러한 의연함이 무사안일주의에 또 다른 모습이라면 심각한 안보불감증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 본문은 유다의 부유층 사람들의 의식을 잘 나타내고 있다. 그들은 먹고 마시는 일에 열중하고 있었고 외부의 침략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었다. 심판이 임박했음에도 안일함에 빠져있는 여인들을 책망하고 계신다.
그 어느 때보다 풍요를 누리는 남한의 모습과 흡사하다. 1,000만의 교세를 자랑하는 한국교회와 너무도 닮아있다. 강단에서는 심판보다는 축복이 넘쳐나고, 죄에 대해서 죄라고 말하지 못하는 치리권이 실종된 시대이다.
오늘 심판을 말씀하시는 이유는 단 한가지이다. ‘돌아오라’는 하나님 아버지의 자비이시다. 평화의 시대에 성도는 등불을 준비해야 한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와 같이 기름을 준비해야만 한다.
깨어 기도의 등불을 들고 임박한 심판을 기다려야한다. 말씀의 등불을 켜고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해야한다. 주야로 묵상하는 자가 복이 있는 자이기 때문이다.
분단 70년, 휴전 62년의 후유증일까? 단군 이래로 이처럼 평화의 시기가 지속된 적이 없는 한반도에 거짓 평화가 난무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할 때이다.
청년실업과 빈곤층의 양산, 총칼 대신에 빈부격차라는 보이지 않는 휴전선이 남한에 또 다른 장벽이 생기고 있지는 않은 지 ‘소리 없는 아우성’이 들려야한다.
더 가지려는 세상에서 나의 것을 나누는 일에 열중하는 교회가 되어야한다. 오른 뺨을 치는 세상을 향하여 왼뺨을 내어주는 용서와 관용이 필요할 때이다. 겉옷을 달라는 세상을 향하여 속옷까지 벗을 것을 각오하는 헌신이 불신의 시대를 살맛나는 세상으로 바꾸는 힘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경색된 남북관계의 개선에도 이 말씀을 적용한다면 해결의 실마리가 보일 것이다. 이웃과의 관계개선을 위하여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여라 하고 이른 것을, 너희가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의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만,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해를 떠오르게 하시고, 똑같이 비를 내려 주신다.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하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세리도 그만큼은 하지 않느냐?” 마태복음 5:43-46 (표준새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