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 24일 목요일
이사야 32:1-8
“공의의 나라 하나님 나라”
내년 총선을 위한 정치권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나라와 국민을 위하여 공의와 정의를 실현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계속되는 그들의 실정에 염증을 느낀 국민들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하다.
“보라 장차 한 왕이 공의로 통치할 것이요 방백들이 정의로 다스릴 것이며” 이사야 32:1
민초들이 꿈꾸는 세상이었다. 공의가 강물같이 흐르는 나라였다. 정의가 하수같이 흐르는 사회건설이 꿈이었다. 그래서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라는 두 이데올로기가 지난 70년을 이 땅을 지배해왔다.
그러나 그 환상에서 깨어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정의를 부르짖으며 시작된 육이오 사변을 통해서 수많은 무고한 생명들이 죽어갔다. 휴전 6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산가족들은 가슴에 피멍을 안은 채 살아가고 있다. 남과 북이 하나 되지 못한 채 조국의 산하가 휴전선이라는 장벽으로 막힌 채 65년의 세월이 흘렀다.
단군 이래 눈부신 경제성장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풍족한 나라가 되었지만 이 문명사회에 이념에 막힌 두 동강 난 조국은 하나가 되지 못한 채, 70년의 세월이 흘렀다. 대명천지에 이처럼 기가 막힐 일이 또 있을까 싶다. 그러나 상처는 아물고 잊혀졌다. 상흔도 세월이라는 시간에 갇혀 남의 일처럼 무감각하게 되고 말았다. 국민의 70%가 통일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 속에 살아가고 있다는 설문조사가 이를 반증하고 있다.
정치권의 화두는 언제나 경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더 잘살기 위한 정책들이 난무한다. 표를 의식한 몸부림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20대의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라는 뉴스를 접하면서 삶의 가치가 경제에 있지 않음이 분명해졌다. 그 어느 때보다 경제적 풍요를 누리고 살아가지만 적어도 사람이 빵만으로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님이 드러난 것이다.
잘산다는 개념부터 바꿀 때가 되었다. 부자로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 아니라 공평과 정의롭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임이 명백해졌다.
“보라 장차 한 왕이 공의로 통치할 것이요 방백들이 정의로 다스릴 것이며” 이사야 32:1
이러한 나라의 실현을 위해서 오늘 두 눈 부릅뜨고 ‘보라!’고 말씀하신다.
이러한 나라 건설을 위하여 성도들은 의에 목말라야 한다. 하나님 나라이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마태복음 5:6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태복음 6:25
세상은 경제에 목말라하지만 성도들은 하나님 나라를 추구해야만 한다.
우선순위가 뒤바뀐 세상에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를 구하라는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