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 18일 금요일
이사야 30:8-17
“구구절절이”
했던 말 또 하시고 또 하셨다. 이제는 지치실 때도 되었는데 포기하지 않으셨다. 이사야 전체가 심판으로 도배하다시피 기록되어있다. 그냥 심판하시면 될 일이었다. 이것이 은혜이다.
이사야는 삼년 동안 벗은 몸으로 신을 벗은 채 살아갔다.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강력한 메시지였다. 등거리 외교로 자신들의 안전을 보장 받기 위해 애굽과 구스를 의지하였다. 그들이 신흥제국 앗수르에게 끌려갈 때의 처절한 모습을 미리 보여주신 것이다. 이사야는 외쳤다. 너희들이 의지할 분은 애굽이 아니다. 구스가 아니라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없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온 몸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제 가서 백성 앞에서 서판에 기록하며 책에 써서 후세에 영원히 있게 하라” 이사야 30:8
광인의 모습이었다. 벗은 몸과 신을 벗은 채, 이사야는 모든 백성이 보는 앞에서 서판에 하나님의 심판을 기록하고 있었다. 심판의 이유를 명확하게 천명하신다.
“그들이 선견자들에게 이르기를 선견하지 말라 선지자들에게 이르기를 우리에게 바른 것을 보이지 말라 우리에게 부드러운 말을 하라 거짓된 것을 보이라 너희는 바른 길을 버리며 첩경에서 돌이키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우리 앞에서 떠나시게 하라 하는도다.” 이사야 30:10-11
거짓복음을 요청했다. 말씀의 편식이 시작되었다. 요즘 한국교회에 번영신학의 파고가 심하게 몰려온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한때는 삼박자 축복이 유행하던 때가 있었다. 틀린 말은 아니나 한쪽 면만 강조함으로서 진정한 하나님의 마음을 전하지 못하는 균형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일제강점기에 신사참배에 대해서 저항한 종교는 기독교만 유일하였다. 당시 모든 기독교 총회가 신사참배가 정당하다며 가결을 선포하였을 때에도 목숨을 담보로 거부했던 몇 몇 지도자들을 통해 한국교회가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다.
등 따시고 배부르게 되자 지난날의 고난을 애써 외면하고 축복만을 노래하는 한국교회를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라 말씀하실까? 두렵고 떨림으로 오늘 이사야의 말씀을 읽는다. 이사야가 거짓복음에서 깨어나라며 외쳤던 그 시대는 아직은 살만한 때였다. 번영을 구가하던 때였다. 그러나 편안함에 도취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을 잃어버린 시대였다.
한국 땅에 이만큼 잘 살던 때가 없었다. 세끼 양식을 꼬박 챙겨 먹는 시대를 넘어서 비만이 질병이 될 만큼 풍요의 시대를 살아간다.
거짓 복음이 그럴듯하게 들린다는 것이 이 시대가 부패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잘 먹고 잘 사는 것의 정의가 부의 축적에 있다고 노래하는 한국 강단이 깨어나기를 기도해야한다. 심판의 도끼가 바로 발 앞에 놓여있음을 믿음의 눈으로 보아야만 한다.
오늘 이사야가 다시 온다면 당시와 똑같이 외칠 것이다.
거짓 복음에서 깨어나라.
말씀의 편식을 버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