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 11일 금요일
이사야 28:7-22
“경계에 경계를 더했으나”
反面敎師(반면교사)란 말이 있다. 극히 나쁜 면만을 가르쳐 주는 선생이라는 뜻으로, 따르거나 되풀이해서는 안 되는 나쁜 본보기로서의 사람이나 일을 이르는 말이다. 남유다가 그랬다. 북이스라엘이 계속되는 부패와 실정에 따라 멸망하게 된다. 그럼에도 남유다는 배우지 못했다. 북이스라엘의 멸망을 바로 눈앞에서 보았음에도 그들은 깨닫지를 못했다.
정치지도자들과 종교지도자들이 독주에 취해서 올바른 판결을 내리질 못했고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했다. 헛짓거리가 난무하고 헛소리가 허공을 갈랐다. 그들은 이사야의 외침을 어린아이의 옹알이 정도로 치부하였다.
그들은 앗수르의 위협 앞에서 하나님 대신에 애굽을 선택한 채 허황된 자만과 거짓 안전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그들은 사망이나 스올과 언약한 것에 불과하였고, 따라서 거짓과 허위에 자신의 운명을 맡긴 것에 불과했다.
“너희가 말하기를 우리는 사망과 언약하였고 스올과 맹약하였은즉 넘치는 재앙이 밀려올지라고 우리에게 미치지 못하리니 우리는 거짓을 우리의 피난처로 삼았고 허위 아래 우리를 숨겼음이라 하는도다.” 이사야 28:15
한 나라의 운명을 자신들의 노력만으로 개척하려했다면 그것을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남유다는 끊임없이 갈지자 행보를 계속하였다. 발 하나는 하나님께 또 다른 발은 세상에 걸치고 등거리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있어서 전부가 아니었다. 일부였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이기적인 욕망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들의 굽은 판결은 움직이고 변하는 세상에 기초하였다. 기준점이 없는 목표 없이 방황하는 인생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판결은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이 없으시다. 요즘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동성애 관련법이 어떠한 결정이 나오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그것은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간통죄가 폐지가 되었어도 불륜은 미화되거나 정당화 될 수 없음 또한 명백하다.
성도의 운명도 마찬가지이다. 스펙을 쌓고 열심히 일하는 것을 마다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삶의 목표가 ‘좁은 길’이 아니라면 그것은 잠시 멈춰 호흡을 가다듬어 볼일이다. 하나님보다 앞서는 것이 바로 ‘넓은 길’이기 때문이다.
성도의 기준은 공의의 저울추 되시는 주님이시다. 정의의 측량줄이 내려진 인생길에서 나의 십자가가 무엇인지 아직도 고르고 있다면 걸음을 멈추고 나의 평안이 어디서부터인지를 돌아보아야만 한다.
아직도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함이 없거나, 인생의 갈증을 느끼고 있다면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했거나 아니면 오늘의 남유다처럼 세상과 하나님나라를 오고가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는지를 돌아보아야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