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금요 심야 기도회 때 한 여름 밤의 힐링이 아닌 가을밤의 힐링으로 정태기 목사님께서 한이 없으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라는 말씀을 내용을 옮깁니다.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2)하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누가복음 15:20#12336;24)
가을이 시작되면 우리는 서정주 시인의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라는 자연스럽게 시를 읊게 됩니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 소쩍새는 왜 그렇게 울었을까요?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을까요?
그런 아픔 속에 한 송이의 국화꽃이 태어났던 것처럼 나는 살아오면서 많은 아픔을 지닌 사람들을 만나 보았습니다.
영성수련회를 다녀간 분들이 약 20,000이 됩니다.
대부분은 그 분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은 아버지, 어머니로부터 첫 만남 관계가 뒤틀려져있음을 보게 됩니다.
비쩍 마르고 음식을 토하니까 먹을 수가 없는 31살 먹은 처녀가 왔습니다.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자매였는데 의사도 치료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 마지막으로 영성 수련회에 참석을 하였습니다.
이 처녀의 고향은 전라남도 영암이고 엄마, 아빠, 오빠와 넷이 자랐습니다.
그 당시에는 아들만 자식이고 딸은 다른 곳으로 시집을 가면 남의 자식이 되므로 자식이 아닌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들은 쌀밥을 주고 자신은 보리밥을 주는 식이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참외 두 개를 사 왔는데 한 개를 짤라 오빠에게 주더니 두 개째를 짜를 때는 나에게는 조금이라도 주겠지 하는데 오빠를 주었습니다.
엄마가 오일장에 갔다가 1년에 한 번씩 정도 먹는 돼지고기를 사왔습니다.
오래간만에 본 고기 냄새가 진동을 하였고 냄비에 돼지고기가 들은 국을 가져왔습니다.
밥을 먹고서 오빠가 국을 몇 숟갈 뜨고 이제는 자신이 먹으려고 숟갈을 대는 순간 ‘이년아 네가 고기를 먹으면 오빠는 먹어’ 라는 아버지의 호통이 들려왔습니다.
그 당시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이렇게 딸로 사는 것을 숙명으로 여겼습니다.
21살 되는 어느 날 용기를 내어서 목포에 있는 양재학원에 기술을 배우러 보내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남의 식구 될 사람 돈을 왜 쓰느냐’며 보내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당신 두 사람은 나의 엄마, 아빠가 아니다라는 말을 남기도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회사 다니면서 이를 악물고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합격하고 회사 다니면서 방송통신대학교를 졸업하였습니다.
그리고 차도 마련할 정도로 살만하였습니다.
엄마, 아빠를 만나기 싫어서 주소도 옮기고 그렇게 10년을 살았습니다.
거의 죽게 될 지경에 왔습니다.
우리 연구원에서는 3일째 되는 날에는 아픔을 이야기 하게 되어 있습니다.
성장과정에 한이 맺혀있습니다.
불을 끄도록 하고서 그냥 자신의 아픔을 이야기 하라고 하며 점점 잔잔한 음악과 함께 더 세게 토하도록 합니다.
걷잡을 수 없게 되며 그리고 맺힌 응어리가 풀리게 됩니다.
자신에게 상처를 준 엄마, 아빠에 대하여 불쌍하게 생각이 되어지고 울음이 터져 나옵니다.
그리고 절대 연락을 취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던 부로를 찾아서 고모에게 전화를 하여서 부모님이 신림동에 와서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전화를 합니다.
전화를 하자 아빠가 전화를 받습니다.
누구십니까? 전화를 잘못했다고 끊습니다.
다시 전화를 하자 ‘너 무슨 일을 저질렀지’
아니야 ‘아빠 미안해, 그리고 아빠를 용서해’ 라고 말을 하자 아빠가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리고 3일 만에 찾아갔습니다.
방에 들어가자 경자야 내가 네 얼굴을 어떻게 봐‘ 얼마나 부모님이 우시는지 통곡을 하였습니다.
‘내가 너를 어떻게 보아! 이 아빠를 용서해다오.’ 아버지는 오열을 하였습니다.
부모님을 용서하고 난 후에 열흘 후에 살이 찌고 7개월 후에는 몸무게가 늘어나더니 3년 후에는 10Kg이나 늘었습니다.
사로 용서를 빌자 성령이 임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지금은 일산 큰 교회 기둥집사로 잘 살고 있습니다,
부모님과 원수로 살 때에는 기도를 한 적이 거의 없었으며 하나님 아버지를 정확히 부를 수가 없었습니다.
진정으로 막힌 것이 뚫렸을 때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게 됩니다.
성정과정에서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분명히 부모님의 문제가 있습니다.
하버드 대학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여덟 살 이전에 경험한 것들이 많은 영향을 끼친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을 괴롭히는 아이들은 부모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는 당하는 아이나 대인관계에서 문제를 지닌 아이들도 부모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들에게 하나님이 어떠하신 분이신가를 가르쳐줍니다.
재산을 다 유산으로 상속을 받아 집을 떠난 아들은 결국은 재산을 탕진하고 친구관계도 끊어져 버리고 먹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품꾼의 하나로 써 주십시오라며 아버지의 집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반지를 끼워주고 살찐 고기를 대접하여 주었습니다.
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35살에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안양공장에 들어갔습니다.
신학교를 졸업하였으면 전도사로 부임을 하여야 하였지만 저는 트럭이 들어와야만 나일론으로 일을 하는 일용직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유학시험에 합격하여 유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유학기간 중 제일 문제가 쓰러질 것 같은 내 건강이었습니다.
52kg 정도가 되었으니 생각을 해 보시면 알겠습니다.
kbc, 즉 갈비씨로 피골이 상접하였습니다.
공부도 안 되고 영어를 말해야 하니 사람이 두려웠습니다.
미국사람이 더 무섭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 학생은 안 되니 돌려보내자는 의견을 교수들이 냅니다.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이야기 하지만 정태기는 아니야 라고 말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나의 스승인 웰츠 박사를 운명적으로 만나게 됩니다.
오후 2시부터 10시간 40분 동안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나를 끌어안고서 ‘너 어떻게 살아났니’ 라고 펑펑 함께 웁니다.
그리고 자라난 이야기를 쭉 듣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두 가정을 꾸몄으며 어렸을 때에 아픔을 많이 겪었으며 외갓집에서 어렸을 때는 살았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16살 나이게 죽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사랑을 받아 보지 못하였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운동회를 하였습니다.
섬사람들은 운동회로 잔치를 벌였지만 어머니는 들에 나갔습니다.
남편을 젊은 여인에게 빼앗긴 어머니는 울분에 일중독에 빠지셨으며 아버지는 우리들에게는 관심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자존심은 있어서 음식을 얻어먹지 못하고 우리는 집에 가서 찬밥을 먹었습니다.
나는 워낙 메말라서 넘어지려고 하는 재봉틀 별명을 가졌습니다.
그 때 무서운 아버지가 나타납니다.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 가 없었습니다.
아버지가 참외 5개를 사와서 주고 간 것입니다.
형과 나는 누가 달랠까봐 뒷산으로 올라가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아버지는 할아버지를 따라 중국에 갔으며 11살에 아버지가 죽자 소년가장으로 살았습니다.
아버지를 이해한 순간부터 내 모든 문제가 풀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나는 대인관계에서 워낙 넘어지려고 하는 재봉틀 별명을 가졌습니다.
그러한 네가 미국교회에서 설교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재봉틀인 내가 무대 체질로 바뀌었습니다.
아버지의 나쁜 기억으로 잊고 살아왔는데 이 기억이 갑자기 떠올랐습니다.
부모와의 관계에서 아직도 안 풀리고 있습니까?
34살 먹은 사람이 연구원에 입학을 한 자매가 있었습니다.
아버지를 너무 사랑하였으며 둘의 관계가 연인과도 같은 정도로 좋았습니다.
그런데 28살이 된 어느 날 자신이 사랑하던 아빠가 자신과도 거의 같은 나이인 처녀와 동거하여 갓난아이까지를 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것을 알았던 그 자매는 너무나 사랑스런 아빠가 그런 짓을 한다는 것에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엄마는 이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고 엄마의 도움으로 회사를 세웠으므로 이혼소송을 제기하여 회사를 분할하여 나갔습니다.
이혼 과정 중에 충격을 받아 맹인이 되었던 자매입니다.
연구원에 입학을 하고서 엄마 아빠 미워하면서 통곡의 과정을 지났습니다.
그런데 그 아버지가 2달 만에 할머니가 죽었고 그 여파로 친척집에 맡기어졌다가 고아원을 전전하였습니다.
그것을 이해하자 불쌍한 우리 아버지 우리 아버지 하면서 아버지를 이해할 때 눈을 뜬 사건입니다.
우리는 부모님과의 관계가 막히면 성령이 들어와서 역사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 부모님과의 얽어매어 있는 관계를 푸는 것이 중요합니다.
(부모와의 관계에서 회복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잘 푸는 비결이라고 말씀하셨는데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잘 풀리면
부모님과의 관계도 잘 풀리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우리를 얽매고 있는 모든 관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