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큐티 본문은 출애굽기 3장 13-22절 말씀입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자신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급에서 이끌어 낼 적임자가 아님을 주장하고
그가 적임자가 아닌 또 다른 반대 이유를 계속해서 제시합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의 말을 따르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알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이름을
스스로 있는 자라고 모세에게 이르시고 그가 이스라엘 장로들을 만나 하나님께서 그들의 외침을
들었으며 그들을 가나안 땅으로 이끌어 내기 위해서 모세를 보내셨음을 말할 것을 명령하십니다.
그리고 나서 장로들과 함께 바로를 만나 그들의 요구를 청하지만 바로가 거절할 것이며 그로 인해
하나님께서 애급을 치게 될 것입니다.
모든 히브리 여자들은 그들의 애급 이웃들에게 은과 금과 의복을 요구하고 그리해서 그들을
빈손으로 가지 않게 하실 것입니다.
왜 모세는 하나님의 이름을 알고자 할까요?
왜 하나님께서는 이루어지지 않을 실행 계획을 모세에게 주실까요?
“내가 내 손을 들어”(20절)
어제 밤 제 딸아이가 예수님을 그의 주인이며 구세주로 영접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이 아이에게는
하나님에 관한 이해의 깊이를 더하기 위해서 더 많은 가르침이 필요합니다.
딸은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를 전혀 모릅니다.
그녀는 우리 안에 또 우리를 통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숨겨진 뜻’에 관해 알지 못합니다.
제 자신 역시 대부분의 경우 그 드러나지 않는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합니다.
인생을 살면서 그 일에 관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게 되는 것은 그 사건이 지나가고 난
이후입니다.
모세의 경우도 이와 같았습니다.
11절에서 그는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급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하고 물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지를 말씀해 주심
으로 그를 도우십니다. 즉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아가도록 허락하지 않을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애급에게 징벌을 가할 때 모두가 하나님의 능력을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바로가 요구를 거절하기를 원하십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런 방식으로 사건들이 전개되기를 원하실까요?
모세도 그 이유를 모르고 저 또한 모릅니다.
그저 하나님의 뜻이 그러하다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왜 하나님은 그의 도구로 모세를 사용하기를 원하셨을까요?
이 또한 모세는 알지 못합니다. 사실 모세는 11절에서 스스로 지적했듯이 하나님의
도구로써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 딸아이를 구원으로 이끌기 위한 하나님의 도구가 되는 것에 대해서 유난히 원치를
않았습니다. 저는 딸이 예수님을 그녀의 구주로 받아들이고 그래서 마지막에 천국에서
만나게 될 수 있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것을 위한 직접적인 도구가 되는 것에
대해서는 부끄러움이 있었습니다.
오랜 시간동안 딸아이의 고향에 있는 누군가가 그녀를 위한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 주기를
바랐습니다. 그것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딸을 한국에 와서 저와 함께 살도록 하셨습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구원을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숨겨진 뜻이었습니다.
모세와 같이 저는 딸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을 주저하고 있었습니다.
딸아이에게 뿐 아니라 가족 전체에게도 그랬습니다.
제 어머니와 아들은 모두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복음을 전하는 시간을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더 허용해 주실까요?
하나님께서 직접 그 일을 하실 수도 있으나 그는 제가 그 일을 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마치 모세에게 이스라엘 장로들에게 가서 함께 바로에게 가기를 원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왜 절까요?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할 일은 하나님이 모세에게 하신 말씀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12절)가 나에게도 또한 항상 함께 함을 믿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적용: 제 딸아이에게 예수님을 더 깊이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도록 매일 복음을 전하겠습니다.
주님! 저의 가족들에게 예수님을 전하는 것에 대한 나의 두려움의 근원인 주저하는 태도의 원인을
알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