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279; 출2;11-25
40년 미디안 광야생활하는 동안 줄을 대서라도 애굽 왕궁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을까? 왕궁까지는 아니더라도 애굽에서 호사를 누리고, 권력의 부스러기라도 잡고 싶지 않았을까?
40년 왕궁 생활에서 왕자로서 모세의 인품이라면 많은 인맥도 쌓았을 것이고 따르는 사람도 많았을 것 같은데...
갑자기 낭떠러지로 떨어지듯 광야의 한 우물가에 앉은 자신의 모습이 처량합니다.
바로에게 모든 용서를 빌고 키워준 어머니에게 읍소하듯 하소연하면 왕궁생활을 다시 누릴 수 있지 않을까?
도와주려던 그 형제만 생각하면 원망스럽습니다.
내 수준의 생각입니다. 인간적으로 세상에서 끈을 잡고 잘 살아보려는 내 생각입니다. 남 탓을 하고싶은 것입니다.
#65279;
이런 생각을 하며 2008년8월에 혼자 나와 살면서 애굽에 대한 미련을 쉽게 끊지 못하고 인간적인 연민과 그리움에 애끓던 지난 시절이 창피하고 부끄러워집니다.
주어진 환경을 모세처럼 받아들이지 못하고, 인정할 수 없다고 분하고 억울하다며 기운 없이 곧 죽을 사람처럼 축처져 다녔던 내가 측은하기까지 합니다. 다른 사람을 밉도록 원망도 했었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환경이 그랬다면 나는 받아들였어야 했습니다. 내가 발악하듯 거부한다고 물러갈 환경이 아니었습니다. 지금은 왔어야 될 일이었고 나의 결론이었다고 못을 박듯이 생각합니다.
기꺼이 받아들이되, 말씀의 우물가를 떠나지는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광야의 환경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했습니다. 주눅들지 말고 쳐져있지 말고, 일어나 다른 사람에게 물도 길어주고 양떼에게도 먹여주어야 했습니다.
모세는 우물가에 앉아 묵상하다가 환경에 ‘예’하며 살아났고 생육하고 번성했지만, 나는 7년이 지났습니다. 질기고 질긴 혈과 육이었습니다. 찰거머리같은 그리움과 연민이었습니다. 돌아가고 싶고 회복하고 싶은 옛 가정이었습니다. 회복은 세상과 육의 회복이 아님을 나중에 알았습니다. 나는 더디 되며 오래 걸리는 자입니다.
아직도 되었다고 끊어졌다고 장담할 수 없고 주저하는 것이 있습니다. 모세가 모든 부귀영화 권력을 뒤로하고 미디안 광야에서 촌부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고 뜻이듯이, 지금 나의 환경도 세상의 부와 명예와 거리가 멀지만 나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뜻임을 믿습니다.
비록 모세가 타국의 나그네가 되었지만 환경에 순종하고 주어진 일과 해야 할 일을 하니, 르우엘도 만나고 십보라도 주시고 게르솜도 얻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속사의 출애굽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항상 옳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652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