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 3일 목요일
이사야 23:1-18
“만군의 여호와께서”
박근혜 대통령께서 대일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축하하는 중국 전승절 7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중국을 방문 중이다. 이 나라의 분단을 고착화 하는데 일조하였던 중국이었다. 20년 전만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지금의 현실이 되었다. 이 모든 일들이 경제적인 가치로 시작된다. 우리나라 교역량의 일 순위였던 미국을 추월한 중국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박 대통령의 방중은 그런 의미에 있어서 도박에 가깝다는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지정학 상으로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생존을 위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두로 역시 지정학 상 항구도시였다. 애굽으로부터 식량을 수입하여 인근 국가에 공급하는 해양 국가였다. 각국으로부터 온 무역상들로 북적거리는 도시에 돈이 몰리면서 부가 창출되었고 그들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윤택한 삶을 누렸다.
돈은 중립적인 것이지만 인간의 죄성을 부추기는데 이만한 것도 없다. 돈을 일만 악의 뿌리라고 한 연유가 거기에 있다.
흥청망청했던 두로가 일시에 폐허가 되리라고 했다. 출항했던 배들이 돌아갈 항구가 없어졌다고 했다. 그들의 삶의 근간을 이루었던 맘몬의 신이 사라지게 되자 그들은 슬피 통곡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것은 삼천년 전이나 오늘이나 동일하다. 경제를 위해서라면 적과의 동침도 마다하지 않는 현실 속에서 참된 가치가 무엇인지를 돌아본다. 두로의 멸망의 근본적인 원인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움직이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보여준다. ‘세상의 끝’이 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심판이라는 도구로 말씀하신다.
모든 것을 누렸던 두로가 멸망했다. 삼천년을 지난 오늘 나에게 말씀하신다. 너도 멸망할 것이다. 오늘 말씀의 초점이 여기에 있다. 모든 사람들이 선호하는 넓은 길을 갈 것인가? 아니면 좁은 길을 걸어갈 것인가?
한국 땅에만 1,000만 명의 종교인들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여기서 종교인들이라 함은 교회에 등록 또는 출석하는 사람들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다. 십자가는 죽는 것인데 죽음을 고려하지 않고 살아간다면 ‘내 십자가’가 무엇인지도 알지 못한다는 말이 되겠다.
번영신학이라는 이름으로 한국교회를 넓은 길로 유혹하고 있는 이 시대에 진정한 좁은 길이 무엇인지를 심각하게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고 천국은 보험 든 것처럼 살아가는 것이 신앙생활이라고 한다면, 그 누구도 반대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한시도 편할 날이 없던 남 유다였다. 풍전등화 같은 나라의 위기 속에서 열강들과 이웃 국가들의 심판을 선포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작은 나라 유다가 온 세상의 중심임을 다시 일깨우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우리의 소망이 있다.
흥청망청했던 잘 나가던 두로의 멸망을 통해 ‘땅 끝에서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기를 소망한다. 심판의 날이 즉, 결산의 날이 있음을 가슴에 새기며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