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 1일 화요일
이사야 22:1-14
“환상의 골짜기”
삼년 동안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다니며 심판을 전했던 이사야의 고단한 삶을 바라본다.
‘듣기 좋은 이야기도 한두 번이지 늘 들으면 싫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이사야는 듣기 싫은 말만 골라해야만 했다. 그 일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정말 하기 싫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그 입술에 숯불을 대신 후로 그는 심판의 나팔수로 살아가게 된다.
환상의 골짜기였다. 시끌벅적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했던 거리였다. 그 거리가 싸워보지도 못하고 죽은 시체들로 넘쳐나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도망친 관원들도 모두 사로잡히게 되었다. 그들을 위한 심판을 계획하셨지만 차마 그들의 참상을 보지 못하셨다. 하나님께서 슬피 우시며 통곡하셨다. 아버지의 마음이셨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던 날, 정오였다. 온 세상이 깜깜해졌다. 그 마음이셨다.
그들은 경고를 들었으나 외면하였다.
오늘도 경고를 하셨으나 듣지 않았다.
그들은 그 와중에 무너진 성벽을 보수하고 식수의 공급을 위해 아래못의 물을 저장하였다. 그러나 이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그들은 망각하였고 돌아오라고 애타게 부르셨음에도 그들은 귀를 막고 외면하였다. 내일을 망각하고 현재에 몰두하여 모레를 애써 기억하지 않았다.
오늘에 기대어 살아가는 자들의 비극이 여기에 있다. 그들은 전쟁에 대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다하였다. 현실에 충실한 자들이었다.
그럼에도 예루살렘은 함락 일보직전이 된다. 이 절망의 순간에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했음에도 그들은 자포자기했다. 위기의 순간에 그들은 고작 먹고 마시자고 했다.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노랫말이 머릿속에 맴돈다.
12절 “그 날에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명령하사 통곡하며 애곡하며 머리털을 뜯으며 굵은 베를 띠라 하셨거늘”
돌이킬 기회의 시간이었지만 낭비의 세월을 살아갔다. 이러한 이들의 죄는 한 달란트를 받았던 종과 같은 삶이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진실로 이 죄악은 너희가 죽기까지 용서하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용서 받지 못한 자들의 전형적인 자세이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못하시는 일이 두 가지 있으시다.
첫째로 회개하는 자를 용서하지 않으실 수 없으시다.
둘째로 회개하지 않는 자를 용서하실 수 없으시다.
이사야 전체가 심판으로 도배되었지만 그것은 애타게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마음이다. 그동안 잊고 살았다.
창조주께서 내 아버지가 되신다는 사실이 위로가 되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