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큐티 본문은 말라기 3장 13-18절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이 완악한 말로 그를 대적하며 악하고 교만한 자들의 죄를 덮어주시고
부유한 삶을 살게 하시므로 그를 섬기는 일이 소용없다며 완악한 말로 대적한 일에 대해서
분명하게 반박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들에게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 있는 기념책에 그 이름을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기억하시고 또한 아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왜 하나님의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사람들은 기념책을 써야만 할까요?
하나님께서는 왜 살아있는 동안 악인들을 심판하지 않으실까요?
여호와의 이름을 묵상하는 자(16절)
#65279;#65279;말라기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묻고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얻고 나서 뒤이어
그에 대한 하나님의 책망의 소리를 기록하는 흥미로운 서술 방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욥이 했던 것과 같은 방법으로 하나님을 개별화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그의 백성들에 대해 큰 불평을 표하십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이 생각했던 대로 행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에 대해 큰 불만을 가지며
악인들이 모든 것을 취하여 탈출하는 것을 그저 방관하시고 자신들에게는 유익한 것이 아무것도
없음에도 그들에게 요구만 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억울하게 여깁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그의 백성들에게 반복해서 요구하시는 중에 약속하시기도 하셨으며
또한 경고하셨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저는 다른 무언가를 보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하나님 앞에 그들이 직접 자신이 누구인지와 그들의 순종과 하나님에 대한
존중을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킹제임스 버전의 성경에서는 ‘여호와의 이름을 존중한다.’의 표현이 ‘하나님의 이름을
묵상한다. ‘ 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표현이 오늘 나의 큐티 묵상을 하게 합니다.
매일 하나님의 이름을 묵상하지만 어제와 같이 진실로 하나님의 이름을 묵상한다고 말할 수 없는
날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대부분의 날에 저는 묵상을 기록합니다.
어떤 면에서 저는 하나님에 대한 기념책을 쓰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죄인인 제가 여기 있습니다. 당신의 말씀을 통해서 당신을 만나고자 합니다. 자비를 베풀어
주옵소서.” 이렇게 외치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것이 또한 오늘 말씀의 16절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주님, 제가 여기 있사오니 제발 저를 짓누르지 마소서”
가끔 저의 큐티묵상이 제게 주신, 제가 꼭 읽어야만 하는 하나님의 책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비록 제가 큐티를 쓰기는 하지만 하나님께서 나에게, 그리고 나를 위해서 내 죄를 보도록 나를 이끄시며
나 자신을 더욱 객관적으로 보게 하시며 그의 경건한 판단의 잣대로 나를 이끌어 가시며 그것을 써
주십니다. 큐티묵상을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정제하고 단련시키는 과정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큐티는 하나님은 누구이신지와 그의 아들에 의해 구원을 얻은 피조물인 나는 누구인가를 떠올리게 하는
거룩한 행위입니다.
적용: 딸과 나의 큐티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주님! 당신을 더욱 진정으로 존중할 수 있도록 당신의 말씀이 더 깊은 사랑과 자비를 써나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