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 27일 목요일
이사야 19:1-15
“나일강이 마르다”
오늘은 심판의 칼끝이 애굽을 향했다.
애굽인들이 태어나 살아온 삶의 터전이었다. 대대로 흘러가던 강이었다. 그곳에 기대어 살아가는 자들이었다. 그 강을 통해 물자가 오고가고 먹거리가 생산되는 경제의 주요터전이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말인가? 그 나일강이 마른다고 하신다. 강이 주는 풍요가 그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어부들의 탄식소리가 들려온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원망하며 읊어댔던 물댄 동산 같다던 애굽 땅이었다. 도저히 상상할 수조차 없는 천지개벽이 일어난 것이다.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자연재해 앞에 모든 인생들이 슬피 울게 된다고 하셨다.
이사야 전반에 걸쳐 진행되는 심판 이야기의 끝은 어디인가? 이것은 전 인류에 대한 심판의 서술이다. 주님 다시 오시는 날, 어느 나라, 어느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심판의 전주곡이었다.
3,000년 전 이사야의 심판의 이야기가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이유이자 오늘 내게 주시는 교훈인 것이다. 땅 끝에서 기다리시는 주님의 이야기이다. 온 인류의 명망성쇠를 손에 쥐고 계신 분이시다. 우리의 믿음은 바로 그 분이 나의 아버지가 되심을 믿는 것이다.
세상은 하나님께서 자기편이 되기를 우기고 살아간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은 언제나 나의 발걸음이 주님과 함께 동행 하는 지에 맞춰져야만 한다. 그러므로 성도의 시야는 언제나 내가 하나님 편에 서있는 지를 살피는 자들이다.
이쪽에 기댈까 아니면 다른 열강을 섬길 것인가를 저울질하고 있는 이스라엘을 향해서 정작 믿어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를 똑똑히 보라는 이사야의 외침은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지리적으로 열강에 둘러 싸여 있던 유다였다. 그 틈바구니에서 생존 기술은 등거리외교였다. 그러나 인생들이 추구하는 외교력을 포기하라고 하신다. 불신의 시대 ‘믿을 사람 하나 없다.’는 탄식이 ‘믿을 분은 한 분 밖에 없다.’로 바뀌기를 희망한다.
휴가 넷째 날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기도를 마치고 서둘렀다. 교회 인근에 있는 남원경승지로 향했다. 남해 바다가 절벽사이로 출렁거렸다. 바다가 태풍의 영향으로 요동쳤다. 파도가 엄청난 높이로 치솟아 올랐다. 파도와 절벽사이로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탄성이 절로 나왔다. 아름다운 남해의 일출을 보다가 ‘바다가 마른다.’는 경천동지의 이사야의 외침을 듣는다.
“바닷물이 없어지겠고 강이 잦아서 마르겠고” 이사야 19:5
푸른 바다보다 시린 하나님의 마음이었다. 세상을 만드시면서 ‘보시기에 좋았더라.’ 연실 wonderful을 외치셨던 하나님께서 오죽하셨으면 세상을 뒤엎을 마음이셨을까? 가슴 아픈 하나님의 마음이었다.
오늘 거듭해서 말씀하신다. 애굽을 의지하지마라. 네가 그토록 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돌아보고 나를 따르라.
두려움으로 말씀의 등불 앞에 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