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 26일 수요일
이사야 18:1-7
“심판 그리고 또 심판”
이스라엘로부터 실망하신 주님께서 심판을 준비하신다. 돌아오라고 돌아와야만 한다고 누누이 말씀하셨지만 그들은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었다. 그들은 무수한 제물을 가지고 나와 평상시처럼 제사를 드렸지만 ‘너희가 마당만 밟을 뿐이라.’고 질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원하는 것은 ‘상한 심령이라’고 하셨다.
그들을 심판하시기 위해서 이스라엘을 둘러싼 열강들을 동원하신다. 그들을 이스라엘을 훈계할 막대기로 사용하신다고 하셨다.
바벨론과 앗수르로 시작된 심판이 모압을 지나 오늘 구스까지 고대근동 지방 모든 나라에 대해서 심판을 선언하신다. 이사야의 마음에는 온 세상의 심판으로 가득 채워졌다. 이스라엘과 그 주위를 둘러싼 모든 나라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위엄과 안타까움이 적나라하게 선포되었다.
때가 되기 전까지는 조용히 바라보며 기다리신다. 그것이 하나님의 부재나 무능 혹은 무관심으로 비쳐질 수 있지만, 한낮의 폭염처럼, 가을 더운 밤에 이슬이 내리듯이 항상 역사를 자기 뜻대로 운행해 가신다. 추수 전에 연한 가지가 베이고 퍼진 가지가 찍히듯이, 하나님의 존재감과 권능을 인정하지 않은 구스도 멸망할 것이다. 남은 것마저 산의 독수리와 땅의 들짐승의 먹이가 될 정도로 철저히 멸망을 선포하신다.
때로는 내 기도에 하나님께서 잠잠하시더라도, ‘기다리라’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여전히 하나님은 역사의 주인이시며 나의 삶을 조용히 감찰하시는 분임을 신뢰해야만 한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졸며 주무시지 않으신다.’ 당신의 백성을 향한 시선을 결코 거두시지 않는다. 이것이 믿음이다.
유다에게 동맹을 요구했던 구스가 장차는 하나님께 동맹을 요청하기 위해 예물을 바치러 시온에 올라올 것이다. 메시아가 만드는 하나님 나라의 일원이 될 이 약속은 사도행전에서 빌립에 의해 구스 출신 내시의 회심을 통해 이루어졌다. 폐쇄적이었던 이스라엘을 넘어 이방 땅에 복음이 증거 되는 ‘역전의 역사’가 오늘 우리 삶에도 일어나도록 기도하자.
우리가 망설이고 있는 ‘사마리아’는 어딘지를 살피고 기꺼이 그들에게 손을 내미는 복음의 역사가 계속되기를 기도하자.
“갈대배를 물에 띄우고 그 사자를 수로로 보내며 이르기를 민첩한 사절들아 너희는 강들이 흘러 나누인 나라로 가되 장대하고 준수한 백성 곧 시초부터 두려움이 되며 강성하여 대적을 밟는 백성에게로 가라 하는도다.” 이사야 18:1
장대하고 준수한 백성들이 즐비한 나라 구스는 민첩한 사절들을 보내서 능숙한 외교력을 발휘하여 북쪽 앗수르 제국의 위협에 맞서려고 했다. 유다에게도 동맹에 합류할 것을 강요하였지만,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만이 그들이 의지해야 할 참 ‘동맹’임을 전하는 사절들로 파송될 것을 예언하신다.
그러므로 고난의 순간에 하나님보다 더 의지할 것들을 바라보지 말자. 세상의 두려움의 대상이 될 만한 장대한 사람이 되기보다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녀가 되기를 소망하자.
3절 ‘보고 들으라.’고 촉구하신다. 세상 모든 사람들을 향하여 산들 위에 기치가 세워지는 것을 보고 나팔이 울리는 것을 들으라고 요청한다. 이것은 전쟁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 알곡과 쭉정이가 나누어진다. 염소와 양이 갈라진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은 심판의 대상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역사의 주인이심을 누구든 다 알도록 철저하게 파괴하실 것이다. 오늘도 준수하고 장대한 나라들이 주도하는 듯 보이더라도 주목하여 하나님의 통치를 살펴보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