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큐티 본문은 말라기 1장 1-14절 말씀입니다.
말라기의 예언을 통해서 하나님은 에서에게는 경멸을 야곱에게는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그의 사랑을 나타내십니다. 제사장들이 바친 희생제물들이 눈이 먼 것,
저는 것, 병든 것, 그리고 훔친 것들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 제물들을 받지 않으시
겠다고 책망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를 악한 것이라고 규정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이 이방민족 중에서 크게 될 것이며 이방 국가들 사이에서 크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하나님의 경고가 (말라기에게) 무거운 짐이 될까요?
만약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사랑하신다면 왜 희생제물을 받지 않으셨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부담”(1절)
NIV버전에서는, 부담이 경고로써 번역되어 있지만 킹 제임스 버전에서는 그냥 짐 또는
부담이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같은 나라 동포에게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전하는 것은
말라기에는 무거운 짐을 지는 것과 같은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책망으로 가득한
그 말들과 함께 곧 있을 징벌에 대해 말해야 한다면 저 역시 커다란 부담을 가졌을 것입니다.
인생을 살면서 나쁜 소식을 전하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전해야 할 때는 말을
더듬거리거나 실수를 하거나 했습니다. 나쁜 소식을 전해야 하는 부담감 때문이었습니다.
학생들의 형편없는 과제물과 시험 배치에 대해서 그리고 어떻게 학생들에게 소리를 지르면서
혼낼 수 있는지에 대해서 다른 교사들에게 큰 소리로 고함을 칩니다.
그러나 학생들에 관한 일로 돌아오면 저는 주저하거나 부드러운 태도로 바뀌어 서는 학생들
에게 성적 과락사실을 알리거나 그들이 제출한 과제물이 수준미달이어서 다시 해야만 한다는
말을 하기가 두려울 정도였습니다.
학생에게 그 과목에 대한 과락을 주는 일만 아니면 이름만 잘 써도 시험 점수를 줄 정도였습니다.
제 아이들에게도 역시 똑같이 대했는데 사소한 잘못에는 소리를 지르며 혼을 냈지만 아이스크림을
사줄 수 없다든가 바다에 함께 갈 수 없다든지 할머니댁에 가지 못하게 되었다는 말을
해야 할 때는 머뭇거리곤 했습니다.
저는 교사들이 맡은 일을 잘 하기를 원하고 그들을 칭찬하는 것은 좋아 하지만 그들이 자기의
일을 제대로 하지 않거나 변명을 하고 자신의 일을 하지 않아서 다른 교사들까지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들에게는 즉시 지적을 하지 못하고 미룹니다.
누군가를 해고하는 일은 즐거운 것이 아니지만 교장이 되고나서는 매년 피해갈 수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그의 선택한 사람들의 이기심과 자기 잇속만 차리는 것과
그들의 창조주이자 구세주인 하나님에 대한 위선적인 태도에 대해 분노를 발하는 일을
즐기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사랑과 정의는 행하기에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매일 제가 생활하면서 저지르는 죄에 대해 생각해 보거나 책임질 일 앞에서 움츠리는 나를 볼 때면
하나님이 이런 나를 계속 사랑하실까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내가 저지르는 잘못이 하나님에 대한 경배를 방해하는 눈이 멀고 절며 병들고 훔친 희생 제물과
같은 것입니다.
적용: 자신의 일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교사들에게 보다 직접적으로 말하도록 하겠습니다.
주님! 악한 세상에서 머물러 살지 않고 요단강을 건너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