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 19일 수요일
이사야 14:1-11
“다시 택하여”
이사야가 이 예언을 말할 때, 그 어느 때보다 유다왕국은 경제적으로 번영하고 있었고 국방도 견고했다. 앞으로 신흥제국으로 등장할 바벨론은 변방 한 편에서 세력이 갖추어지지 않은 미미한 존재였다. 유다의 시선은 바로 코앞에 있는 앗수르가 가장 큰 위협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사야는 앗수르를 넘어 바벨론에 의한 멸망을 선포한다. 어떤 이들은 콧방귀를 날렸을 것이다. 세월이 흐르고 오늘이라는 시선으로 그들의 명망성쇠를 바라볼 때,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틀림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역사는 흘러간 시간이 아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지침서이다.
결론은 이스라엘의 방자함을 훈계하시기 위해서 바벨론이라는 제국을 일으키시고 그들을 통해 막대기를 드신다는 것이다.
민족의 영화가 자신들의 노력에 의해서만 결정된다는 교만과 자신들의 운명이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많은 대가를 지불해야만 했다. 결국 하나님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바벨론의 등장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다는 것이다. 우주를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 만왕의 왕 되심을 가르치신다.
이사야는 거듭해서 심판과 회복을 선언하고 있다.
세상에서 살 때, 사랑은 달콤한 것인 줄 알았다. 그러나 주님을 만나고 말씀 속에서 배운 사랑은 ‘언제나 오래참고’로 시작되는 고린도전서 13장의 말씀이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사랑하신다는 구체적 표현이 참고 또 참으신다는 점이다. 그리고 기다리신다. 이것이 사랑이다.
그들이 더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현재라는 시간에 매달려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멸망을 넘어 포로 된 자들의 귀환을 선포하신다. 근시안적인 자들에게 내일을 넘어서 모레를 보라는 하나님의 초청이시다.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었던 강대국 바벨론의 멸망을 노래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이사야를 비롯해 당시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이해할 수도 깨달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기독교는 오늘을 살아가는 종교가 아니다. 내일을 바라보며 오늘을 사는 자들이다.
나의 짧은 인생길에서 만난 굴곡진 삶을 정의해본다.
‘실수는 있었지만 실패하지 않았다.’
그 단 하나의 이유는 바로 하나님께서 끝까지 내 손을 잡으셨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 야곱을 긍휼히 여기시며 이스라엘을 ‘다시 택하여’ 그들의 땅에 두시리니 나그네 된 자가 야곱 족속과 연합하여 그들에게 예속될 것이며” 이사야 14:1
내 입술의 노래는 바로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으십니다.’
오늘을 넘어 나를 바라보고 계시는 주님을 향하여 좁은 길을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