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금요심야 기도회에서 들었던 말씀을 나의 버전으로 옮깁니다.)
내일부터 24일까지 북유럽 여행을 다녀오기 위하여 옷을 다리미질을 하였는데 곳곳에 꾸겨진 모습을 보면서 주님이 나를 보실 때 이렇게 인생이 반듯이 펴졌으면 하였으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거룩하신 주님 앞에 설 때마다 나의 연약함, 비굴함 등을 보게 됩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이러한 나에게 죄를 고백하며 그 곳에서 떠나라고 하십니다.
내가 죄를 고백할 때 주홍빛 같은 죄일지라도 흰 눈 같이 희게 하시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요한일서 1:5∼10)
하나님도 모르는 죄가 있습니다.
한 집사님이 다른 사람이 아들자랑을 하자 시기심이 일어나서 흥하고 도저히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깨닫지도 못하면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죄가 되냐고 거부감을 보인 이유입니다.
우리 모두가 죄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하나님을 만난사람은 저는 죄인입니다라는 고백을 합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어부인데도 예수님이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하자 그 곳에 던지어 그물이 찢어지도록 고기를 잡자 무릎아래 엎드리어 죄인이라고 하였습니다.
<누가복음 5:8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하나님의 전능하심 앞에 자신이 낮고 미약함을 발견하였습니다.
베드로의 관심이 이방인, 사마리아인, 세리, 창녀의 영혼 구원에 관심을 가졌지만 그 이전에 죄에 대하여 발견하도록 하셨습니다.
바울은 로마의 시민으로서 특권을 가지고 있었으며 종교적 열심히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사울이라는 큰 자라는 뜻으로 예수님을 만나서 바울이라는 작은 자로 바뀌었습니다.
어떤 남자 집사님이 건강진단을 위해 병원에 갔습니다.
검진 결과가 그래프로 신체의 비밀들이 드러났습니다.
그리고 건강을 위해서 많은 준비를 합니다.
여러분을 인생을 살아가면서 무엇을 준비하고 대비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몸에 외상을 입으면 알기 때문에 대비할 수 있습니다.
나만 느끼는 통증은 스트레스가 주요 원인이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인식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가장 무서운 지병을 보이지도 않고 통증도 없이 오며 돌이킬 수 없을 때 나타납니다.
죄에 대하여서도 유사한 면이 있습니다.
살인, 도적질 등 뉴스에서 보는 범죄가 있습니다.
드러나지 않는 양심의 범죄가 있습니다.
사이버, 교통위반, 거짓말 등 이는 주관적이기 때문에 죄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고 마지막으로 드러나지 않는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나타나는 죄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디모데전서에서 자기 자신을 죄인 중의 괴수라고 말하였습니다.
<디모데전서 1: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비울은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엄한 율법을 배웠으며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열심히 하였던 한마디로 예수님의 복음을 위해 살았던 사람이 왜 죄인 중의 괴수라고 말을 하였을까요?
오늘 이 사회에서는 죄에 대하여서는 떳떳하다며 떵떵거리며 살아가고 있음을 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지은 죄 모르고 지은 죄, 나의 양심이 죄지은 것이라고 하는 죄가 있습니다.
귤 한 상자를 사다가 두면 한두 개가 꺼멋꺼멋해지는데 이것을 그대로 두면 다 썩어 먹지를 못합니다.
이 만큼 죄도 모든 것을 지배하려는 지배력이 큽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양심을 덥거나 포장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거울에 비춰보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죄인 것을 내가 죄를 지었다고 고백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우리 인간의 역사는 이 죄와의 싸움의 역사다.
모른다고 잊어버렸다고 하면서 은근 슬쩍 넘어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히틀러와 함께 당시 전쟁을 주도하였단 알르프데 쉬페르는 전쟁이 끝난 후 그 댓가로 혹독하게 20년 옥고를 치렀지만 지금도 그 죄에 대하여 생각하면 자신이 죄인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자신이 지은 죄를 책으로 써서 출판을 자신이 지은 죄를 회개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그분들에게 죄책감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보아 우리는 죄에 대하여는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아뢰고 그 죄에서 떠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이러한 죄악은 다시금 씻어지고 없어져야만 합니다.
죄에 관하여 이야기를 할 때 연필과 지우개의 예를 많이 듭니다.
죄를 지으면 하나님 앞에 고백하고 다시 새로 쓰면 됩니다.
인간의 나약함으로 인하여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죄인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지은 죄, 죄라고 모르고 지은 죄, 공동체가 지은 죄에 대하여 우리는 고백하며 이 죄가 우리를 올무로 묶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앞으로 더욱더 좋은 선을 행하면 됩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죄를 대하는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아침에 출근하다 긍동방송에서 신사참배를 거부한 주기철 목사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당시 신사참배에 동참을 하였던 선배들을 비방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굳건히 절대 권력의 우상 앞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으며 고백하며 나아갔던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었던 신앙의 절개를 들었습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고백하며 사람과 하나님이 나의 삶의 주인임을 고백하며 나아갑니다.
주여! 나에게 긍휼을 베푸시어 내 입술을 주장하여 주옵소서!
나의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은 미더우시고 의로우셔서, 나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해주실 하나님을 믿고 나아갑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