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 11일 화요일
이사야 10:5-19
“두 종류의 심판”
“가난한 자를 불공평하게 판결하여 가난한 ‘내 백성’의 권리를 박탈하며 과부에게 토색하고 고아의 것을 약탈하는 자는 화 있을진저! 벌하시는 날과 멀리서 오는 환난 때에 ‘너희’가 어떻게 하려느냐. 누구에게로 도망하여 도움을 구하겠으며 너희의 영화를 어느 곳에 두려느냐.” 이사야 10:2-3
하나님은 고통 받는 수많은 무리들을 ‘내 백성’이라 나의 소유라 하시고 권력을 쥐고 쥐락펴락하는 자들을 경계선 넘어 '너희'라고 부르신다. (이경원님 묵상 인용)
연약한 백성들을 암탉이 알을 품듯 자신의 가슴에 품으셨다. 그리고 당신의 백성을 건드린 자들 ‘너희’를 심판하시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신다. 고대 근동지방에 애굽의 뒤를 이어 패권을 장악한 앗수르였다. 가장 강한 나라를 통해 경건하지 않은 나라 이스라엘을 치는 도구로 쓰신다. 천하를 호령하던 앗수르도 세상 역사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진노의 막대기요 그분의 손에 들린 몽둥이일 뿐이었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말처럼 비록 그들을 통해 이스라엘을 징계하셨지만 앗수르의 교만에 대해서 심판을 선언하신다.
여기에 두 종류의 심판이 있다.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애잔한 사랑이 여기에 있다. 몽둥이를 드셨지만 돌아오기를 바라는 애비의 마음이셨다. 그에 비해 앗수르를 향한 심판은 멸망 그 자체였다. 그 황폐함을 이렇게 표현하신다.
“그의 숲에 남은 나무의 수가 희소하여 아이라도 능히 계수할 수 있으리라.” 이사야 10:19
우리나라 역시 한 세대 전만해도 벌거숭이산이 대부분이었다. 6.25를 거치면서 전화에 국토가 초토화 되었고 그나마 남은 숲은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백성들의 땔감으로 잘리고 파헤쳐졌다.
기세등등한 강대국 앗수르의 멸망의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시다.
“그의 말에 ‘나는’ ‘내 손’의 힘과 ‘내 지혜’로 이 일을 행하였나니 ‘나는’ 총명한 자라 열국의 경계선을 걷어치웠고 그들의 재물을 약탈하였으며 또 용감한 자처럼 위에 거한 자들을 낮추었으며” 이사야 10:13
앗수르의 실패는 자신 앞에 이뤄진 모든 것들이 자신의 능력이라고 기고만장한 것이다.
내 손, 내 지혜, ‘나는’ 등, 모든 주어가 자신임을 자랑하였다. 하나님께서 용납하실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교만’이다.
당대 모든 나라가 두려워하는 강대국 앗수르를 한낱 막대기 정도로 사용하신다. 진정으로 두려워할 분이 하나님이심을 깨달으라는 이사야의 호소가 메아리처럼 들려온다.
“돌아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