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절 양을 잡을 무교절날이 이르러서
에수님은 그 희생양이 되셔서 저의 고통을 대신 담당하시고
저룰 치유하시기 위해 준비를 하십니다.
그 준비에 성내의 물 한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서
객실을 찾으면 그가 자리를 준비해 있을 거라고 하십니다.
저도 반일치이식 과정에 세번째 큰산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골수이식할 때는 '전처치'라는 첫번째 산,
'골수이식 당일'이라는 두번째 산,
'이식 후 수치 회복기간'이라는 커다란 세번째 산이 있다고 합니다.
두번째 산까지는 큰 힘든 일 없이 방실방실 웃으며 무#44533;실 생활을 잘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세번째 산을 제대로 오르지 못했는데 벌써 발목이 잡힙니다
mtx라는 항암제를 사용해서 '면역억제제'효과를 노리는데
원래 개별목적에 비해서 약한 용량으로 주사를 맞지만
위낙 독하고 점막을 손상시키는 약이라서
주사맞는 동안 입에 얼음을 물어야 입이 적게 헌다고 합니다.
얼음 물고 있기가 쉽지 않아서 꼼꼼하게 입안을 충분히 식히지 않았는듯 했습니다.
두번째 mtx까지는 입이 그리 아프지 않았는데
오늘은 세번째 주사 맞기 직전에도 입이 녀무 아파서 정신이 없었습니다.
주사를 맞은 후에 서서히 밀려오는 입안 통증은 뭐라고 설명도 하기 힘듭니다.
잇몸과 혀와 목까지 너무 붓고 헐어서 아픈데, 통증이 있는 부위는 작은 부분에 속하지만
그 작은 부분이 아파서 몸 전체가 뭄직일 수 없을만큼 아픕니다.
저는 진통제를 두려워하는 사람입니다.
'해피카인'이라는 진통효과가 있는 가글약도 추가로 받고
미리 진통제도 하나 받아놨습니다.
행복한 카인? 왜 그런이름을 가졌는지 궁금합니다.
하지만 아벨을 죽인 카인이 행복하다고 멋대로 해석을 하니..
심한 입안 통증을 빠르게 진통시켜주는 효과와 함께
저의 죄인됨과 악함을 알려주는듯한 이름이 감사하게 느껴집니다.
해피카인을 맞고 잠이 들었는데 소변이 마려워 잠에서 깼다가
입이 너무 아파서 소변도 보러 일어날 수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진통제를 먹었는데 효과가 오기까지 시간이 걸립니다.
이 진통제는 제가 몇가지 먹어본 진통제중에 효과를 느껴본 거의 유일한 약이지만
기억을 잃어버려서 전후사정을 통째로 모르거나 이상한 스토리로 만들었기 때문에
두려워하는 약입니다.
그런데 이 약을 먹어도 효과가 느리게 오는둣 해서 잠시도 곁딜 수가 없고 눈물이 흐릅니다.
간호사를 불러서 진통제를 맞고 조금 덜아프긴 한데 그래도 약이 더 필요하다고 했더니
주사약을 가지고 옵니다.
그리고 저는 두려워하는 진통제 부작용에도 거침없이 주사도 맞기로 했습니다.
지금은 저의 죄로 인해 저의 죄값을 받는거나 다름없어 보이고,
저의 고통과 희생이 의미없어 보입니다.
저의 고통으로 누군가가 구원얻는다면 제 뭄하나 구원받기에도 부족해서
누군가에게 나주어 쓸 기름이라고는 택고 없습니다.
하지만 성내의 물 한동이를 가지고 가던 사람은 유월절을 준비하며
누군가가 머무를 공간을 준비하고 있었는듯 합니다.
저를 위해 많은 분들의 기도의 노고와
꼭 저의 고통을 덜어주고 치료하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지성과 노동의 모든 수고를 아끼지 않는 간호사, 의료진들의 아름다운 모습과
제 한몸 구원얻기도 급급해서 도움을 요창하고 애정과 관심을 바라는 저와의 대조적인 모습이
성내의 물 한동이 가지고 가던 사람에게서 느껴집니다.
예수님도 우리를 구원하실 준비를 하시고,
성내의 물 한동이를 가지고 가던 사람도 예수님이 쓰실 객실을 준비하고,
저도 호화로운 무균실 1인실에서 저는 죽고 예수님이 사실 준비를 하고 있는데,
저는 부족하고 못나고 더디기가 끝이 없습니다.
제 몸 하나 구원받는 부끄러운 구원을 얻는 인생이 아닌
에수님이 지나가시다 언제든지 객실을 찾으면 반길 수 있는 예비하는 자가 되고싶고
천사들이 지나가다 언제든지 집에 모셔와서 조카의 구원을 요청할 수 있는
준비된 아브라함 같은 자가 되고 싶습니다.
앞으로 더 열이나고 '이식편대숙주반응'이라는 병이 찾아올수 있다고 합니다.
기억을 잃어버리게 하는 두려워하는 약을 두려움도 버리고 먹었고,
무슨 부작용을 더 겪게될지 두려운 새로운 진통제 주사도 달았고,
기저귀를 차고"싸거나 까무러치거나 까짓것 보다 더하겠어?"하고
그 두려움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려고 하고,
약의 효과는 점점 나타나서 언제 아팠냐는듯이 멀쩡하게 앉을 수 있을 지금이 어쩌면
마지막 정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이 모든 것들이 감사함뿐입니다.
지금 글을 적지 않으면
다시 마지막은 없다는 생각으로 큐티를 하게 되었는데
저에게는 결코 죽지 않을 일일지라도
죽움을 준비하고 죽음을 묵상하며 큐티를 하게 된 일이
복되고 감사한 행복한 시간임을 고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