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 1일 토요일
이사야 6:6-13
“부르심”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이사야를 시작하시면서 하나님의 첫마디이셨다.
거역한 자식들에 대해 배신감을 토로하셨다. 이사야의 시작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화를 요청하신다. 하나님의 끊임없는 부르심이었다. 일단 만나서 문제를 해결하자고 하셨다. 그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요청을 묵살하고 만다. 바람맞으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하여 일갈하셨다. 무수한 제물이라고 하셨다. 그들은 예배에 아주 열심을 내고 있었지만 아무소용 없는 헛짓거리라고 하셨다.
이 참담한 심정을 ‘슬프다’라고 말씀하시다.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께서 슬픔을 고백하셨다. 이사야 1:4, 1:24
남유다를 52년 동안 통치한 웃시야 왕이 죽던 해였다. 한 세대가 가고 또 다음 세대가 오는 변혁기에 이사야는 하나님을 뵙게 된다.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이사야 6:5
하나님을 존전에서 그는 자신이 죄인인 것을 깨닫게 된다. 이스라엘의 멸망을 외쳤던 이사야도 죄인이었다. 그렇다면 누가 이 땅에 살아남을 수가 있단 말인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어느 누구하나 예외 없이 죽어 마땅한 자들인 것이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하나님의 은혜만이 구원 받을 수 있음을 고백했다.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라고 했다. 그가 주님을 만나기 전, 열심이 특심한 자였다. 스데반의 순교로 각국으로 흩어진 성도들을 말살하기 위해 가이사랴까지 여행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자칭 의로운 사람이었다. 그랬던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 지를 깨달았다. 어둠이었던 자신의 누추함이 빛 되신 주님으로 인해 밝히 드러난 것이다.
그는 인간을 정의하기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로마서 3:23
누구하나 예외 없이 죽어 마땅한 자들이라고 했다. ‘죄를 지어서 죄인이 되었다.’라기 보다는 ‘죄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죄를 짓게 된 자들’이란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이러한 죄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에게 멸망을 선포하라고 하셨다. 그에게 부여된 임무는 그들이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아도 알지 못하도록 하라는 뜻밖의 말씀을 하신다.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달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염려하신다고 하셨다. 하나님의 슬픔이 극에 달하셨다. 다시는 보지 않겠다는 선언이셨다. 그러나 하나님의 본심은 따로 있었다. 그냥 심판하시면 될일이다. 오늘 이처럼 자신의 마음을 토로하시는 것은 돌아오라는 하나님의 마음이시다. 집나간 탕자를 동구밖을 바라보며 학수고대하시는 아버지 마음의 역설적 표현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