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 25일 토요일
이사야 3:13-4:1
“절망의 땅에서 부르는 희망의 노래(2)”
이사야는 잘 알고 있었다. 상류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던 향락과 사치를 직접 눈으로 목격하였다. 그는 웃시야 왕의 사촌이었다고 한다. 왕족으로서 지도층의 삶을 누구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보고 있었다. 그들의 교만과 방종을 연민과 슬픔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그들의 멸망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누차 당시 지도층의 비리를 고발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멸망의 원인이 외부의 침략에 앞서 내부의 균열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알리고 있다.
손자가 생기고 틈틈이 아이를 돌본다. 칭얼거리는 아이를 엎고 이 방 저 방 순회하면서 더운 날씨에 등짝이 젖어오노라면 진한 유년시절의 추억이 떠오른다.
‘아! 이렇게 나를 키우셨겠구나!’
까마득히 잊혀 져 생각조차 나지 않았던 어머님의 사랑이 기억 저편에서 스물 스물 기어 나온다.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도 자식을 키우는 어미의 심정이었을 것이다.
이스라엘이 그랬다. 금이야 옥이야 애지중지 키웠는데 매정하게 부모를 버리고 떠나가 허랑방탕하게 살았던 집나간 탕자였다. 그가 오늘의 이스라엘처럼 망하고 망해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조차 떨어졌을 때, 비로소 아버지의 집을 기억하였다. 그는 돌아가고자 마음먹는다. 아들이 아닌 품꾼으로 돌아가기로 작정한다. 그의 두 번째 선택은 옳았다.
오늘도 당시 이스라엘의 지도층의 향락과 사치를 고발하는 것은 아직은 돌이킬 시간이 남아있다는 희망의 메시지이다.
이웃의 포도원을 삼킨 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가난한 자들에게서 탈취한 물건을 압수수색하셨다. 구속영장을 발부하시겠다고 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경고를 콧등으로도 여기지 않았다. 하늘 법정에서 하나님께서 직접 그들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것은 돌아오라는 간절한 하나님의 사랑이셨다.
그들의 영화를 보여주던 코걸이 귀걸이 발목거리 팔목거리 등 각종 사치스러운 치장들을 모두 제하시겠다고 하셨다.
“너희의 장정은 칼에, 너희의 용사는 전란에 말할 것이며, 그 성문은 슬퍼하며 곡할 것이요 시온은 황폐하여 땅에 앉으리로다.” 이사야 3:25-26
피할 수 없는 전쟁 속에서 그들의 보호자가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을 말씀하신다. 남자가 씨가 마르고 여자들이 넘쳐나는 시대가 될 것을 예고 하셨다.
경제적으로 호황의 시기였고 막강한 군사력을 자랑하던 때에 이러한 이사야의 외침은 공허한 메아리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가 장장 66장에 걸쳐 이스라엘의 부패를 고발하고 있는 것은 애타게, 아니 학수고대하시며 동구 밖을 바라보고 계신 아버지의 마음이셨다. 이것이 은혜이다.
이사야 49:8절 말씀을 인용하면서 희망을 전하는 사도 바울의 간절한 노래를 듣는다. .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고린도후서 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