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 24일 금요일
이사야 3:1-12
“보라”
“보라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예루살렘과 유다가 의뢰하여 의지하는 것을 제하여 버리시되” 이사야 3:1a
홍해가 갈라지고 반석에서 물이 나왔다. 이쯤 되면 하나님을 배신한다는 말은 입 밖에도 나오지 말아야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밥 먹듯이 하나님께 원망을 쏟아놓았다.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인생들의 아킬레스건은 망각에 있다. 너무도 쉽게 잊어버린다는 것이 문제의 출발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패도 여기에 기인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말씀의 중요성을 그들의 삶 속에 새기길 원하셨다.
“이러므로 너희는 나의 이 말을 너희의 마음과 뜻에 두고 또 그것을 너희의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고 너희 미간에 붙여 표를 삼으며 "또 그것을 너희의 자녀에게 가르치며 집에 앉아 있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하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하라.” 신명기 11:18-20
예전 집들에는 ‘立春大吉’ ‘建陽多慶’ 등이 대문에 커다란 글씨가 부쳐져 있곤 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대문과 문설주 심지어 손목과 이마에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였다. 그들의 삶은 가히 말씀 안에서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실패하였다. 내용을 잃어버린 채 형식에 머물렀던 그들의 종교생활에 있었다. 무수한 제물을 가지고 나아갔지만 땅만 밟을 뿐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하셨다. 열심히 제사를 드렸다. 지금으로 말하면 예배중심의 삶을 살았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들의 현실의 삶은 하나님의 마음과는 다르게 살아가고 있었다.
오늘은 말씀을 떠난 자들에 대한 심판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신다. 그들이 의지하고 있는 것을 차례대로 제거하시기로 작정하셨다. 그들에 풍작을 가져다 준 이른 비 늦은 비를 끊으셨다. 당연히 거둘 소출이 없어지고 기근에 시달리게 된다.
아름다웠던 자연이 신음하고 모든 질서가 혼돈의 세계로 빠져들게 된다. 창조이전의 세계로 돌아갔다.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더라. 말씀대로 이루어진 삶이 복된 삶인 것을 이사야는 끊임없이 강조하며 돌아오기를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의지하고 있던 수족들이 끊어지고 나서야 하나님만을 바라보게 된다. 그래서 시편은 그 첫 마디를 복 있는 자의 정의로 시작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라고 하였다.
이스라엘 건국의 기틀을 놓았던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정권을 이양할 때, 하나님께서 첫 번째 주신 말씀 역시 동일하였다. 여호수아 1:8절 말씀이다.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된 여호수아는 당연히 떨며 두려워했을 것이다. 그때, 그를 향하여 주신 말씀이다. 인생들이 두려워하는 모든 것들을 이겨낼 최선의 선택이 말씀 묵상이었다. 승리의 비결이 적용 즉, 실천에 있음을 가르치셨다.
오늘 이사야는 ‘보라’는 명령으로 시작했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라고 하신다. 말씀대로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삶인지 아닌 지를 돌아본다. 진정한 인생의 형통은 말씀대로 사는 삶인 것을 기억하며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