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이 담긴 시선으로
수원시에서는 매일 아침 전국의 300만 독자에게 인생의 지혜를 전달하는 아침편지 문화재단 고도원 이사장을 모시고 수원포럼을 개최하였습니다.
이번 제61회 수원포럼은 고도원 작가를 초청해 ‘혼이 담긴 시선으로’ 란 주제로 열렸습니다.
고도원 작가는 신문기자를 거쳐 청와대 연설담당 비서관을 역임했으며, 지난 2001년부터 매일 아침 300만 네티즌에게 이메일 편지를 보내는 ‘고도원 아침편지’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혼이 담긴 시선이란 곧 마음을 담는 것’이라 말하는 고도원 작가는 다양한 삶의 지혜와 사랑, 갈등, 관계에 대한 혜안, 혼이 담긴 시선으로 살아가는 법, 함께하는 이들의 소중함을 되새길 수 있는 진솔한 이야기로 수원포럼을 찾는 이들의 마음을 풍성하게 해 주었으며 저서로는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1,2)’, ‘꿈 너머 꿈’, ‘당신이 희망입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등이 있다.
저는 사람과 자연이 만나는 곳, 좋은 사람들이 몸과 마음을 모여서 치유하는 곳, 꿈이 이뤄지고 꿈너머 꿈이 이루지는 깊은 산속 옹달샘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세월호 사건 때문에 또다시 메르스 사태로 멍들었습니다.
저는 글을 쓰는 사람이었고 아침 편지를 쓰는 사람입니다.
오늘 주제가 혼이 담긴 시선으로로 하였는데 즉 마음을 담아 서로 바꾸어 쓸 수 있습니다.
인생이 바뀌는 180도 바뀌는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2분짜리 연설로 유명한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이 있습니다.
언어가 말이 그만큼 중요합니다.
오늘은 첫째 인생에서 터닝 포인트를 잡아라.
둘째 끝에 가서 오메가 포인트를 찾아라 입니다.
여러분의 북극성을 찍는 일이 인생에서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어느 대학생이 좋은 꿈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꿈이 이루어지고 난 후에가 없어서 그 꿈은 진정한 꿈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꿈너머 꿈을 꾸어야 합니다.
꿈이 이루어지고 나면 그 꿈으로 인하여 펼칠 영원한 인생이 기다리고 있다면 성공한 사람입니다.
비록 대통령이 된다고 하여도 대통령이 되고 난 후에의 삶이 없다면 그저 그런 사람이 될 뿐입니다,
내가 너무나 일에 열중한 나머지 5년 동안 사흘밖에 쉬지 않고 대통령 연설문을 썼더니 건강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마라톤을 시작하였습니다,
청마도 청와대 마라톤 동우회, 아마존 등을 시작하였습니다.
더 이상 나태해지기 싫어서 쓴 것이 고도원의 아침편지입니다.
2001년에 시작하였는데 희망이란 루쉰의 (고향)중에서의 시로 열었습니다.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고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위의 길과 같은 것입니다.
본래 땅위에는 길이 없었다.
한 사람이 먼저 가고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그때 깨달은 것이 명상을 하였는데 명상을 섭렵하기 위하여 세계 많은 도시들을 찾아 다녔습니다,
꿈을 꾸기 시작하였고 이 꿈을 승하시키기 시작하였습니다,
큰 꿈은 저점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저는 시골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개척교회를 하시다 보니 이사를 자주 갔습니다.
정들자마자 떠나는 것이 너무나 싫었습니다.
한번은 이사를 갔는데 형들이 나를 끌고 가서는 내가 잘 모르게 웃으면서 데리고 간곳이 지푸라기를 넣은 똥통이었다.
죽이고 싶었지만 이러한 어린 시절을 보내었습니다.
어머니가 이사를 가면 먼저 안아주고 반겨주는 집사님이 있는데 조심하라고 하였습니다.
제일 먼저 반기는 사람이 제일 먼저 배신을 하여 비수를 꽂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책을 읽는 동기가 되었습니다.
어느 시군에서 비라는 제목으로 글짓기를 하여서 참여를 하였습니다,
천장에서 떨어지는 빗방울 우리 어머님의 눈물이다.
하지만 마지막 부분은 희망적인 말로 썼습니다.
중학교 때 아버지는 독서카드를 쓰게 하시면서 독서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처음에 가르쳐 주지 않아서 잘 못써서 회초리를 맞은 기억이 생생합니다.
청소년기에 반항심도 생겨서 집을 나가려고 하였지만 그래도 위화도 회군을 하여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열심히 공부한 결과 연세대에 들어갔습니다.
그때 내가 쓴 글이 십계명으로 남산을 자주 드나들었습니다,
순전히 등산 목적이 아닌 긴급조치 9호 위반이었습니다.
그래서 군대도 강제로 징집되어 수많은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제대 후에는 빨간 낙인이 찍혀서 취업이 되지를 않았습니다.
거기서 할 일이 없자 빨리 읽는 속독법을 배웠습니다,
할 일이 없자 장가부터 가야겠는데 지금의 아내를 자빠트렸습니다. ^^^^
초스피드로 결혼을 하였고 결혼식 때 축의금을 가지고 오지 않는 백수 친구들로 붐볐습니다.
부모님 집이 종교가 달라서 반대가 심했습니다.
처음 시작한 일이 포장마차였습니다.
하루 시작하자마자 그만 두었습니다.
여기에 있는 공무원 분들은 철저할 때 생각을 해보기시 바랍니다.
문방구를 시작하였는데 목이 좋아서 계약을 하였는데 복덕방 아저씨자 돈을 떼어 먹고 사라졌습니다.
물이 넘어가지 않고 식도가 막히고 기도마자 닫혔습니다.
그리고 웨딩드레스 디자이너를 시작하였습니다.
중곡동 산 위에 집으로 가져가면 아내가 씻다가 넘어져서 두 번이나 유산을 하였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박이 터져라고 싸웠습니다.
‘먹을 것이 없으니까 꿈을 먹고 살자.’ 라는 기발한 아이디어가 생각났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죽기 전에 대통령 연설문을 쓰고 죽어야겠다고 말을 하였습니다,
평소 같으면 웃기고 있네. 할 터인데 그날은 그래 써보셔요. 라고 아내가 말을 하였습니다,
어느 누구도 꿈 이야기를 하면 조롱해서는 안 됩니다.
다 도망갈지라도 한명이라도 격려해 주면 힘이 생겨납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뿌리 깊은 나무입니다.
일을 시작하자 부지런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전두환 정권시절에 선데이 서울과 함께 폐간이 되었습니다.
또다시 절망에 떨어졌습니다.
나의 평소에 글 솜씨를 알고 있었던 중앙일보 기자인 최기자가 나를 스카우트해 갔습니다.
그리고 경찰서를 드나들면서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사화하면 그것이 특종이 되었습니다.
오열하는 이야기를 적어 내려가면 그것이 톱기사로 나갑니다.
나는 중학교 때 아버지가 주어서 읽게 하였던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가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책을 읽어서 내용을 알고 있었는데 역사의 연구를 줄줄 외우니 신가하게 생각을 하여서 대통령의 연설문을 쓰는 1급 비서관으로 채용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미래에 두 가지 주목할 곳이 있습니다.
카이스트와 한동대입니다.
100만장자로 살기 위해 먹고 살려는 꿈을 꾸지 않고 미래를 보는 꿈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인가 될 거야’ 라고 생각하면서 꿈너머 꿈을 꾸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중심에서 미래 공동체를 위한 새로운 꿈을 꾸는 사람들입니다.
수원포럼에 참여하시는 여러분들도 큰 어려움이 닥칠지라도 그것을 터닝 포인트로 삼고 그 너머에 있는 오메가 포인트를 바라보면서 사시기를 바랍니다.
인생 너머에 있는 인생의 비전을 바로 보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북극성을 향해서 최선을 다한다면 좋은 길이 열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