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큐티 본문은 누가복음 14장 25-35절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따르던 무리들에게 자신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가족과 자신의 인생으로부터
돌이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망대를 짓는 사람이 먼저 그 충분한
비용을 계산할 수 있어야 공사가 중단되어 마치지 못함으로 사람들의 비웃음거리가 되지 않을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전쟁에 임하는 왕은 먼저 승리의 가능성을 계산하고 (가능성이 적다면)
화친을 청해야 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짠 맛을 잃은 소금은 (아무 쓸모가 없어)
버리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가족을 미워하라는 명령이 정말 미워하는 것을 의미할까요?
다른 종류의 건물이 아니라 왜 망대일까요?
“비용을 계산하라”(28절)
살아오면서 대부분의 시간 동안 저는 제 자신의 욕망이 얼마나 큰지에 대해서 잘 계산하지
못했습니다. 왜 그런지는 잘 모릅니다. 이 큐티 묵상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알려주시기를
원합니다. 이제 그 말씀을 듣고 적용할 준비가 된 것 같습니다.
제가 비용 계산을 잘하는 유일한 경우는 학교 아이스하키팀을 이끌고 2주 동안 유럽에서
열리는 대회에 참가하기 위한 비용을 계산해야 했을 경우였습니다.
놀랍게도 저는 비용관리를 잘해서 비용이 남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제 돈의 관리에 관해서는 언제나 적자를 보게 됩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모은 돈으로 혼자서 유럽으로 갔습니다.
처음에는 돈 관리를 잘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감이 생기면서 돈에 대해 부주의하게
되었고 결국 계획한 것 보다 일찍 돈이 떨어져서 결국 아버지에게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서
예약한 비행기 표를 일주일 앞당기도록 재조정해 달라는 부탁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몇 년 뒤 두 번째로 유럽에 갔을 때는 오토바이를 한 대 샀고 여기 저기를 여행하다가
첫 번째와 같은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점점 더 돈에 대해서 신경을 쓰지 않았고 과하게 지출을 했으며 결국 의도했던 것보다 일찍
돌아와야 했습니다.
첫 번째 아내와 연애를 시작할 때 나의 바람사건과 그녀와의 이혼과 아이들을 갖게 되는
것과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에 대한 대가와 비용을 계산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그 시기 경제적으로 어려운 고난의 시간은 그 뒤에 이어지는 첫 번째 아내가 죽기
직전의 나의 바람사건으로 인한 감정적, 영적 그리고 경제적 고통에 비하면 가벼운
것이었습니다. 그에 대한 대가를 생각하지 못하고 나의 정욕으로 취할 수 있었던 것들이
나의 행복을 더 크게 해 줄것이라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직업을 잃었고 미국에서 강체출국 당할 위기에 몰렸고 돈도 모두 잃었으며
빚은 더 늘어났고 하루에 두 끼의 식사와 방값을 지원해 주는 실업자에 대한 지원책에
의지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몇 년 전 함께 대학을 다녔고 나처럼 교사가 된 한 친구를 만났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인생의 비용을 계산하였기 때문에 저와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첫 학사학위를 받는 자리에서 그는 찬찬히 그가 치러야 할 비용에 대해 계산했습니다.
대학원에 진학하지 않고 교육대학으로 진로를 정했고 특수교육을 전공할 것을 선택했는데
그것이 취업이 잘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취업에 별 관심이 없었으므로 대학원에 진학했고 이렇게 하는 것이 장래에 더 큰
이익이 되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는 특수교육 교사로 몇 년간 일하다가 일반 교사로 옮겨 갈 계획을 세웠고 실제로도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도 나처럼 영어교과 주임교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교장이 되는 코스를 밟으면서
먼저 교감이 되었고 그 다음 교장, 장학사, 부 이사를 거쳐 교육담당 이사의 자리에까지
올랐습니다.
그는 리더십에 관한 책들에서 인용되어질 정도의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가 계산한대로 그는 세상적으로 성공했습니다.
은퇴를 하고서도 그는 여전히 병원의 이사이며 자선행사에 참석합니다.
그의 아내는 유방암을 앓고 있습니다.
그를 만난 자리에서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오픈했지만 그는 자신의 성공에 관계된 것만을
인정했습니다. 그는 은퇴의 대가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했고 그것에 대해서도 그는 계산을
했다고 합니다. 세상적으로 그는 존경받을만한 사람입니다.
그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그의 영적인 것 때문이었습니다.
죽음이 멀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에 대한 대가를 생각해 본적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오늘 본문에서처럼 우리에게 가진 모든 것을 요구하셨지만 그것이 얼마나
큰 대가인지를 저는 알지 못했습니다.
내 인생의 많은 부분들처럼 예수님을 따르는 것에 대한 영적인 이득은 주님과 함께 하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것임을 저는 보았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에 대해서 세상적인 계산을 했더라면 저는 절대 그를 따르라는 명령에
순종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고도 시도했었지만 예수님의 명령은 제가 무시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님을
하나님의 은헤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CS 루이스의 은총에 대한 묘사를 좋아합니다.
그는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은 마치 진흙으로 만든 파이를 가지고 노는 것과 같고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영광스러운 것이며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집에는 방이 많다고 하는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과 같다고 표현합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따르는 결정에 대한 대가에 대해 경고하신 것은 그것을 수행하기 위해서
우리가 감내해야 할 고난과 어려움에 대해 경각심을 갖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죄 때문에 매일 죽으며 또한 십자가를 지는 것은 즐거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어서 끝나기를 바라는 인내의 경주이기도 하지만 또한 그것은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온유함 그리고 절제와 같은 살아가면서 계속해서 얻게 되는 하나님의 은혜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삶이 힘든 것이지만 그렇다고 쉽게 새상적인 것을 따르는 것이 그것을
덜 힘들게 하지 않음을 잘 알고 계십니다.
제가 결코 적용하지 못했던 교훈은 제가 아이스하키팀과의 여행에서 그러했듯이 내가
남에게서 받은 모든 돈이 결국은 돌려주어야 할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나의 돈도 아니고 나의 시간도 아니었습니다.
결국 돌려주어야 하는 돈이고 시간이기에 지금까지 해 왔고 현재도 하고 있는 것들을
더욱 더 잘 해야만 합니다.
비용과 대가에 대한 계산은 이렇게 해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적용: 나의 환경에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보다 이기적인 자기만족에 소모하는 것들에
대해서 매일 기록을 남기도록 하겠습니다.
주님! 내게 주어진 시간과 돈이 나의 것이 아니라 당신의 것임을 더욱 깊이 깨달을 수
있도록 성령으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하루를 기꺼이 당신에게 드릴 수 있는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해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