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 21일 화요일
이사야 1:21-31
“正義(정의)를 위한 正意(정의)”
지존하신 하나님께서 지극히 낮은 곳에 관심을 갖고 계신다고 했다. ‘낮은 데로 임하소서’라는 안요한 목사님의 간증집이 가슴을 뭉클하게 한 기억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미 낮은 곳에 계신다. 그곳에서 성도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으시다. 세상 사람들의 시선은 높은 곳을 향하여 달려가고 더 높아지기 위해서 애쓰며 수고한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서는 늘 낮은 곳을 향하신다.
요즘 정치권의 화두가 ‘소통’이다. 청와대를 향한 국민들의 볼멘 목소리 중 하나가 국민의 마음을 헤아려 달라는 것이다. 자주 접촉하고 대화를 요청하는 목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대화를 요청해도 청와대가 문을 열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들을 당신의 협상테이블로 초청하신다. ‘오라’고 하셨다. 그리고 대화를 촉구하신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이사야 1:18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손을 내밀고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변론하자고 대화를 요청하신다. 이것이 은혜이다. 문제는 우리가 외면하고 있을 뿐이다. 여기에 비극이 있다. 그것이 살길인데 등진 몸을 돌이키기만 하면 되는데 웬 고집인지? 앙탈인지? 화를 자초하고 있다.
하나님의 심판은 정의를 다시 세우시기 위한 도구이다. 포기할 수 없는 ‘정의’를 위해서 오늘도 일하신다. 공의의 기준점이 바로 과부와 고아였다. 그들을 외면하는 것이 바로 ‘불의’라고 말씀하신다. 연약한 자들을 위해 싸우시는 하나님이시다.
거룩한 백성이라고 자부하고 있던 종교심 많은 이스라엘을 향하여 ‘창기’라고 부르신다. 더 나아가 살인자로 규정하셨다. 고관들의 행태를 도둑놈이라고 하셨다. 이러한 자들의 특징은 자신만을 위해 사는 가치관을 가졌다.
이웃을 향해 눈 돌릴 여가가 없다. 더 가지기 위해 자신을 던지기 때문이다. 더구나 눈에 들어오지 않는 과부와 고아를 위해 변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는 자들이다.
이러한 자들을 용납하실 수가 없으셨다. 대대적인 심판을 준비하셨다. 그것이 바로 회복을 위한 수순이었다. 패망과 멸망 그리고 물 없는 동산처럼 전쟁과 기근의 회초리를 드신다. 최종적으로 불의 심판은 끌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선언하셨다.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자들은 복되다. 아직은 피할 길이 있기 때문이다. 기회는 단 한 번뿐이다. 오늘 바로 돌이키는 자가 복된 자들이다.
오늘 나는 어느 곳에 서있는가?
낮은 곳에 있는 연약한 자인가? 아니면 연약한 자들을 돕기 위해 애쓰는 자인가? 이 둘 중 하나가 생명길이다.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기 위해서 귀를 기울이시는 주님과 좁은 길을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