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큐티 본문은 누가복음 13장 1-17절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보기에 두드러진 모습으로 죽은 사람들의 죄가 더 큰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영원히 죽지 않도록 회개하라고 두 번씩이나
말씀하십니다. 또한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를 포도원 지기는 찍어 버리기를
원하지만 한 사람이 일 년만 더 기다려 달라고 하는 비유를 예수님께서 들려주십니다.
왜 포도원 지기는 그 남자에게 한 번의 기회를 더 주는 것에 동의했을까요?
회당장은 안식일에 병을 치유하는 일을 시작하는 것에 동의했을까요?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가 있더라”(11절)
저는 열여덟 해 동안 몸이 곱아 펼 수 없었던 여자와 같습니다.
내 인생의 대부분에 있어서 저는 영적인 불구자였고 자기 의로 남을 정죄하고
내 안의 분노로 나는 그러기를 원하고 기대했지만 스스로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와 같은 사람들을 찍어 내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은 내 병을 치유해 주셨지만(12절) 저는 남에 대한 공감과 분별력 그리고 남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 편협한 태도를 취하며 몸이 여전히 굽어져 있습니다.
계속해서 죄를 지음으로 나의 회개는 결코 끝이 나지를 않습니다.
처남은 저를 사랑하지만 저는 여전히 그의 가장 작은 단점을 빌미로 그를 까칠하게
정죄하면서 계속해서 그를 존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내와 저는 우리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그를 이끌어 주기 위해서
처남에게 직접적으로 나무라는 행동을 하지 않기로 했고, 이후 그는 세탁기를 돌린다든지
청소를 한다든지 하는 것을 스스로 하면서 우리를 도와주려는 태도로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도 그에 대한 기대치에 대한 갈등이 있으며 그가 우리 부부를 도와주려고
할 때에도 그가 해야 할 이상적인 행동을 머릿속에 떠 올리면서 비교를 하곤 합니다.
나의 상상 속에서의 그의 완벽한 모습과는 다르게 현실적으로 완전하지 못한 그는 (내 기대를
충족시켜줄) 가망성이 없어 보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전혀 빨래를 하지 않았던 그가 지금은 빨래를 합니다.
하지만 그와 우리의 빨래를 널어 놓는 것은 너무 엉성하고 부주의해서 자주 셔츠나 바지에 자리가
남게 만듭니다.
그리고 내 마음속에는 그와 그의 노력을 비난하는 마음이 들지만 이내 회개를 합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은 무화과 나무를 찍어 내 버리는 것이 아니라 주변을 두루 파고 거름을 주는 일입니다.
지금 나는 처남이 널어놓은 빨래에 자리가 남지 않도록 다시 펴서 널고 있습니다.
이렇게 빨래를 다시 펴서 너는 것은 예수님께서 나의 굽어진 몸을 펴도록 도와주신 것에 대한
작은 적용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적용: 나중에 다시 하지 않도록 처남이 빨래 너는 일을 처음부터 도와 주도록 하겠습니다.
주님! 제가 무화과나무를 찍어서 버리는 일을 멈추도록 하옵소서! 내 몸이 다시 굽어지지
않도록, 곧게 편 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