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279;본문: 눅12:35~48
제목: 생각지 않은 때에
올 2월 구정 전 어느날 오른쪽 가슴이 피부에 화농이 생기면 근질거리는듯한 그런 느낌이 있었습니다. 이삼일 지속되는 느낌에 만져보니 오십원짜리만한 멍울이 아래쪽에 만져졌습니다. 신경에 거슬렸지만 곧 증상도 가라앉으니 단순한 섬유종이겠거니 곧 병원 가 봐야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얼마후 일대일양육 모집 공고가 올라왔습니다! 고대하던 순간이 왔습니다! 꼭 양육을 받기를 사모하며 기다렸으니 기대 만빵으로 지원서를 제출했습니다. 그리고 속으로 아차! 했습니다. 혹여 가슴의 멍울이 복잡한 양상을 띠어 일대일양육을 중도에 포기하게되는 경우가 생기면 어쩌지? 싶었습니다.
그리하여 혼자! 아무에게도 묻지않고! 양육이 끝난후에 가슴문제는 해결하기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후 주변에 "나 가슴에 멍울이 있어!" 이야기하면 "별거 아닐거야! 요즘은 의학이 뛰어나서 그런 섬유종 레이저 한방 쏘면 깨끗하게 해결돼!" 이런 반응이었습니다. 아무 이상도 없이 컨디션 난조도 없이 일대일양육에 집중하며 시간은 흘러갔습니다.
감동과 은혜를 기대했던 양육과정은 나의 죄를 파헤치는 조금은 고난스런 시간이었으나 결과적으로 다시 태어난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는 사건 중 하나로 기념할만한 일이 되었습니다.
꺽어진 백년을 살도록 끈질기게 붙어있던 '열등감'의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그동안 저는 나의 전인격적인면에서 복병처럼 불쑥 튀어올라오는 열등감에 대해 '나는 피해자'라는 가치관을 고수하고 있었습니다.
구조적으로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세상에서 죄로인해 악해진 사람들에 의해 나같은 청소아줌마, 식당아줌마 일을 하는 약자의 입장에 있다보니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내안에 자리잡게 된 쓴뿌리이기에 나는 피해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일대일양육 과정에서 끝까지 파헤치는 하나님의 은혜로 거의 막바지에 이르러 '열등감을 선택하고 있는 나의 죄를 보았습니다' . 독후감 과제물을 하면서 김양재 담임목사님의 저서를 읽으며 아담이 범죄한 이후에 사람들이 나는 선하고 너는 악하다는 자기의에 사로잡혀 타인을 정죄하는 죄를 짓는다는 구절에서 눈이 밝아졌습니다.
그랬습니다. 나는 의롭고 내 열등감을 자극하는 타인들이 악하다는 자기의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위치에 서서 판단하는 죄를 짓고있는 나의 교만한 모습을 맞닥뜨렸습니다.
이렇게 죄를 깨닫고 이 은혜를 목장에서 나누며 일대일양육 선경험자인 지체의 열등감에 대한 나눔에서
'인정함'에 대해 들으며 완전한 해방을 맛보는 듯 했습니다. 그냥 내 모습 그대로 인정하면 되는 것인데..
그것이 지금의 나를 세팅하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순종하는 것인데.. 정말 내가 교만했구나!
백프로 내가 죄인임을 인정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일대일양육이 끝나기 전 저에게 적용까지하기를 요구하셨습니다. 마지막 10회 양육을 앞둔 오월 '석가탄신일' 연휴 마지막 날 저는 회사에서 휴일 당직을 서게 되었습니다. 저의 직장은 군부대입니다. "계급이 깡패다."라는 자조섞인 이야기가 진리인 철저히 계급에의해 움직이는 조직입니다. 그날 상급부대의 별이 두개나 달리신 장군께서 갑자기 암행순찰을 왔습니다.
이 일로 갑자기 평화롭던 연휴 마지막 날 부대는 멘붕상태가 되었고 특히 같이 당직을 서던 상급자(삼십대초반의 대위)는 추상같이 높은 장군의 호령에 핵폭탄급의 충격과 사후조치에 대한 무거운 짐이 뚝! 떨어졌습니다. 그 장군님의 호령은 부대 식당안에서 사용하는 국 끓이는 통이 왜 찌그러졌느냐? 복 나가게서리~~
였었었습니다! 하 하! 여튼 이 일의 여파가 늦은 밤 당직 한조였던 저와 병사에게까지 미쳤습니다. 새벽 2시경 죽음의 시간이 되어 살짝 근무자리를 벗어나 옆방에서 다리를 펴고 앉아 선풍기를 쏘이고 있는데 근무 정위치를 지키라고 상기된 얼굴로 대위가 불렀습니다. 예전의 저였다면 백만가지 이유를 달아서라도 비합리적이고, 비신사적이며, 비인격적인, 반인권적인 처사에 대해 분노하며 "너가 죄인이다"라고 정죄하기 바빴을텐데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상대가 이해가 되고 "나라도 마음을 맞추고 풀어줘야지! 질서에 순종하자!"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꼬박 24시간을 단 한숨도 자지 못하고 좁은 의자에 거의 붙박이로 앉아 한 날이 지났습니다. 그렇게 피곤했던 당직후 이틀 삼일까지는 당연히 몸이 아픈것이 정상적 현상이라고 생각했는데 점점 날이 지날수록 말로 표현되지 않는 힘겨움이 지속되었습니다. 일주일이 넘어간 후 어느날 문득 "가만있어봐라..암환자들이 감기몸살이 지속되어 병원갔다 알게된다하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즉시 병원을 갔고 암진단을 받았습니다. 네달만에 팽창하듯 자란 암덩어리가 너무 커서 가슴 전체를 드러냈습니다. 일대일양육이 끝난 후 체 한달도 되기전에 이 일이 휘몰아치듯 지나갔습니다. 주치의선생님은
단기간에 급속히 번진 암크기에 비해 갈비뼈쪽이나 임파선쪽으로 전이되지 않은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소식. 좋은 소식"이라고 몇번이고 말씀하셨습니다.
생각하지 않은 때(40절)에 암이 저에게 닥쳤습니다. 수술을 이틀 앞두었던 날 말씀은 눅 5:12~26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침상째 메고 와 예수님께 내린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내가 수술대위에 올라 단한마디 기도도 할 수 없는 중풍병자같은 전적 무능력의 전신마취의 무의식 동안 친구들의 믿음으로 일어났듯이 지체들의 중보기도로 나도 다시 살겠구나! 확신이 생기니 1%의 두려움도 없이 수술을 받았습니다.
지체들이 저에게 생명의 양식을 나누어 준것입니다.(42절)
그런데 1차 항암치료를 받고 부작용으로 며칠을 고생한 후 향후 남아있는 5회의 치료와 방사선치료를 어찌 이겨낼까 마음에 요동이 일어 잠 못 이루며 "그때 진작 갔어야 했는데.." 후회스럽다가.."일대일양육을 그래도 받은 것이 은혜인가?"의심이 들기도 하다가 오락가락했습니다.
그런데 다시금 나의 죄를 봅니다.
그동안 저는 아주 초미세한 이상에도 두려움에 떨며 6개월에 한번씩 정기검진을 다니는 주변 지인들을 보며 속으로 "엔간히도 한다!" 살짝 경멸하는 교만한 자였습니다. 이번일도 하나님보다 앞서가며 혼자 생각하고 결정한 시건방을 떨었습니다. 그래서 치명적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반면 하나님은 저를 살리시려고 제가 깨닫지못하던 그 순간에도 부단히도 암세포가 전이 되지 않도록 막고 계셨습니다. 저를 은혜로 덮고 계셨습니다.
항상 이 패러다임인거 같습니다! 저는 어쩔수없는 죄인으로 오류를 반복하고, 항상 하나님은 그런 저를 반복적으로 용서하시고 은혜로 이끌어 가십니다.
지금은 고통속에 있기에 흔들리지만 긴 안목으로 본다면 오른 가슴 한 쪽 떼어내고 하나님께 나아가는데 발목을 잡던 열등감에서 해방되었으니 이득인거 같습니다.
옷을 갈아입을 때마다 프랑켄슈타인을 보는 느낌이지만 이 육체의 흔적을 볼 때마다 나의 교만과 실수, 이것을 만회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할 수 있으니 이 또한 이득인거 같습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