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큐티 본문은 누가복음 12장 35-48절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자신이 언제 돌아오게 될지 알 수 없으므로 항상 깨어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주인을 잘 기다림으로서 그 주인이 오히려 종의 수종을
드는 비유를 예수님께서 이야기 해주시자 베드로는 그 말씀이 자신들에게 하시는 것인지
모두에게 하시는 것인지를 묻습니다. 예수님은 또 다른 비유로 말씀하시기를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서 그들에게 부당하게 행하면 그는 잡혀 영벌에 처해진다고 하십니다.
베드로의 태도는 왜 배타적일까요?
왜 나쁜 종들은 지옥에 가게 될까요?
첫 번째로 근무한 학교에서 저는 외모가 훌륭하고 머리가 좋고 돈까지 많은 학생들에게
하나님은 그들의 인생에서 많은 것을 요구하신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말을 해 줄 위치에 있었다고 믿었고 누군가는 그들에게 이 말을 해 줘야 한다고
나름대로 믿었기 때문에 그렇게 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내가 가진 것이 많은 아이들을 질투하는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내가 한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지만 나 자신이 그들을 시기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말을
제가 하는 것은 적절치 않았습니다. 저는 그들의 구원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모든 꿈이 좌절되고 망해서 빚더미에 올라있는 나와 같이 그들이 실패하기를 바랐습니다.
훌륭한 조언을 해 주는 것도 좋지 않은 이유로 하는 것이라면 죄를 짓는 행동입니다.
그것은 자기 의로 인해서 남을 괴롭히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평상시에 내가 받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이 많은 나로서는 내가 받은 것을 잘 살펴보라는
오늘 본문 말씀에 염려가 됩니다.
오늘 본문의 비유는 달란트에 관한 비유를 변형한 것인데 두 가지 경우 모두에 있어서
나의 교만함과 욕심과 게으름 때문에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것에 대해 억울해 하는 저의
모습을 봅니다.
나에게 주어진 환경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도움으로 그 환경에 잘 적응하는 의미를 가지는,
내 인생에서 좋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해서 감사하는 마음을 갖지 못하고 문제가 없는
나의 현재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보기에도 좋고 편한 환경으로 바뀌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모습을 한 예수님이 되셔서 십자가의 구원을 믿는 것 이외에는 자신들의
죄의 결과로 인해서 그 죄로부터 벗어나는 희망을 갖지도 못한 채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져
버린 인간들인 자신의 피조물을 섬기는 사명을 가지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섬김의 본을 제시하셨습니다.
내가 받은 모은 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한 것입니다. 내가 그들로 인해서 힘든
훈련을 받았음에도 나에게 가족을 주신 것은 그들을 섬기란 뜻입니다.
구성원들이 아무리
미숙하고 고집 세고 자기의가 강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저에게 영적 공동체를 주신 것은
그들을 진심으로 섬기라는 뜻이 있습니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의 선생님들과 학생들도 마찬가지로 섬겨야 할 대상입니다.
교사생활을 하면서 학생들과 동료 교사들과 교장선생님을 잘 섬기는 것이 나의 의무이고
사명이었지만 저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남을 시기 질투하기 바빴고 인정과 성과를 위해서 정력을 소진해 버렸습니다.
예수님은 너무나도 분명하게 나의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그것을 헤아리기 위해서 불려오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명령은 분명합니다. “시종 들기에 어울리는 옷을 입고 등불을 들고 서있으라”는
것입니다.(35절) 군대 귀신이 들렸던 사람과 같이 예수님에 의해 귀신이 내쳐진 사람은 옷을
바로 갖춰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섬기는 삶의 자세를 취하게 됩니다.(눅 8:35)
내가 그동안 살아오면서 많은 시간동안 이것을 행하지 못했고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 회개합니다.
적용: 다시 학년을 시작하게 될 때 행사와 일정을 미리 준비해서 교사들을 잘 섬길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주님! 당신이 제게 섬기라고 묶어주신 모든 사람들을 잘 수종들 수 있는 자세를 가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