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7:13-26
“그들의 손으로 내버리니라.”
“그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사도행전 23:11
사도 바울이 가고자 하는 로마는 이미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길이었다. 죄수의 몸으로 백부장의 호송을 받아 배를 타게 된다. 처음 배는 아시아를 무대로 무역을 하는 화물선이었다. 길리기아를 지나 밤빌리아 바다를 건너 루기아의 무라시 항에 어렵게 도착했다. 그곳에서 이달리야 행 무역선으로 갈아타게 된다. 지금 우리들로는 생소한 이름들이지만 이 편지를 받아든 데오빌로 각하는 로마제국 전체를 아우르는 지명이 전혀 낯설지 않았을 것이다. 2,000년 전에 276명이 승선한 배라면 당시에 가장 큰 범선이었을 것이다.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난 시기였다. 당시 웬만한 사람이면 다 아는 항해하기가 어려운 절기였다. 바울이 일행을 만류하였다. 하지만 제2의 타이타닉처럼 큰 규모의 배라는 자부심이었을까? 출항을 강행하고 만다.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고 했다. 그들은 앞으로의 항해에 대한 전망보다도 오늘 내가 머물 편한 곳을 택했다. 이러한 근시안적인 태도는 세상 사람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안전보다는 선주의 경제적 이익이 우선되는 결정을 한다. 영원한 세계를 외치지만 현실이라는 감옥에 갇혀 내일을 준비하지 못하는 것과 동일하다.
선장과 선주의 섣부른 선택이 유라굴로 광풍을 만나 자신들이 배를 제어하지 못하는 지경에 다다른다.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버리고
사흘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를 그들의 손으로 내버리니라.
막다른 골목 생명이 경각에 달렸을 때, 자신의 손에 이룬 업적과 쌓아올린 부와 명성이 아무것도 아닌 것을 샘물호스피스를 갈 때마다 보게 된다. 의학적으로는 회생이 불가능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인생의 마지막, 어차피 피할 수 없는 막다른 길에 선 말기 암환자들이 제대로 죽기위해서 선택한 곳이다.
죽음이라는 벼랑 끝에 선 사람들.
그럼에도 끝내 손아귀에 무엇인가를 움켜잡으려고만 했던 인생들이 그 손을 스르르 펴고 세상을 떠나는 모습은 인간의 연약함을 말없는 웅변으로 보여준다. 죽음은 모든 것을 내려놓는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심판이다. 어느 누구하나 비켜갈 수 없는 평등한 세상이다.
오늘은 풍랑을 만나 사투를 벌이던 사공들이 배에 있는 모든 것을 버리기 시작했다. 살기위한 마지막 선택이었다. 나는 여기서 누가의 의도적인 삽입에 눈길이 갔다.
“그들의 손으로 내버리니라.”
하나님의 방법은 우리가 자신이 할 수 있다는 모든 것을 내려놓기 전까지는 천국을 주실 수가 없으시다. 하나님 나라는 이 세상의 것을 포기할 때, 주어지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주님을 만났을 때, 삶의 고비마다 내 손을 잡아 주셨을 때, 그때는 정말 세상의 것이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살기 위해 자신들의 모든 것을 자기들의 손으로 버렸을 때, 하나님께서 비로소 일하신다. 인생이라는 거친 파도가 우리를 덮쳐올 때, 바로 그때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만날 절호의 기회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길이었다.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한 바울이었다. 그러나 풍랑은 그를 비켜가지 않았다. 그 풍랑 속에서 바울이 배 위에 서있다. 절망 중에 소망을 선언한다. 모든 것을 잃었지만 가장 소중한 것을 얻게 된다. 바로 내 것인 줄만 알았던 생명이다. 절대 절명의 위기의 순간에도 사도 바울은 반드시 살 것이라는 소망의 메시지를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죽음이 새로운 시작, 부활이다. 바로 믿음이다. 이것이 복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