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 10일 금요일
사도행전 26:24-32
“한결같은 사람”
묵상을 하다보면 아침이 분주하다. 매일처럼 나갔던 한강이 이제는 참 먼 곳이 되었다. 새벽기도가 끝나면 부리나케 자전거를 타던 시절이 엊그제처럼 생생한데 묵상과 운동을 병행하기가 어려워, 지난 일 년 동안 아침 운동을 거의 하지 못했다. 적어도 한 시간 이상은 해야 운동을 했다고 생각하니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운동을 한다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다.
오늘은 내 상식의 틀을 깨고 새벽기도가 끝난 후,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동작대교까지 왕복 15km, 라이딩 시간 45분. 비교적 짧은 시간 가까운 거리였지만 힘차게 페달을 밟았다. 운동효과를 높이려고 시속 35km로 달리자 땀이 비 오듯 옷에 흥건히 고였다. 드디어 한강에서 라이딩을 마치고 성수대교 앞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는데, 70대 어르신께서 말을 건네 오셨다. 어디로 가느냐는 질문에 이것저것 자전거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실컷 나누고 돌아섰는데 아차! 싶었다.
마음속에 사도바울이 떠올랐다. 이 년 간의 억울한 옥살이를 마칠 절호의 기회가 왔는데 그는 자신의 무고함보다도 복음을 전하고 있었다. 독한 사람을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사람이라고 하는데 바울은 쿡 찌르면 복음이 튀어나올 사람이지 싶다.
그 어르신께 복음을 전하지 않고 이런저런 이야기만 나눈 것이 후회가 되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그리스도만을 존귀케 하려했던 복음의 사나이 사도바울을 기억하며 고개를 숙였다.
“이튿날 아그립바와 버니게가 크게 위엄을 갖추고 와서 천부장들과 시중의 높은 사람들과 함께 접견 장소에 들어오고 베스도의 명으로 바울을 데려오니” 사도행전 25:23
아그립바 왕은 자신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크게 위엄을 갖추고 바울을 맞았다. 그런 왕 앞에서 너무도 당당했다. 그러한 권위 앞에 쫄지 않았다. 오히려 당신이 앉아 있는 자리보다 더 좋은 나라가 있다고 소개했다. 자신이 믿고 있고 발 딛고 서있는 하나님 나라를 가리켰다.
아그립바 왕은 유대인이었고 지난 날, 예수의 십자가 사건도 알고 있었다. 그러한 종교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왕을 향해 바울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 안에 복음을 최선을 다해 전하였다. 이런 바울을 베스도는 큰 목소리로 제지하면서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하였다고 했고, 아그립바 왕은 ‘짧은 말로 나를 그리스도인으로 만들려고 하느냐’고 힐난했다. 그러나 그는 멈추지 않았다. 결코 멈출 수가 없었다.
예수를 믿기만 하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 좁은 길을 알리기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 최고의 권위의 정점에 있는 왕을 향해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한다는 어찌 보면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외쳤다. 한껏 차려입고 높은 위엄을 과시하던 아그립바 왕 앞에서 당신이 나와 같이 되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하고 있는 바울의 자부심은 그가 얼마나 하나님 나라를 사모했는지를 보여준다. 그는 하나님 나라의 아들이었다. 하나님의 대리인으로 그들 앞에 선 것이다. 이러한 자부심, 당당함이 복음의 능력이다.
그렇다면 그는 특별한 사람이었던가? 아니었다. 우리와 똑같이 소심하고 때로는 분노하였던 사람이었다. 그의 편지에 그의 이러한 속사정이 잘 나타나있다. 그러나 그는 이년간의 수감생활에도 한결 같은 마음이었다. 바울의 존재 이유는 딱 하나였다.
“복음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