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 9일 목요일
사도행전 26:12-23
“부활의 노래”
한껏 위엄을 갖추고 심문하고 있는 아그립바 왕 앞에 다시섰다. 이년동안 죄수 아닌 죄수로서 억울한 옥살이를 한 바울의 입에서 잊을 수 없는 간증이 다시 시작되었다. 그는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하지 않았다. 당당하고 의연하게 주님을 만났던 다메섹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생생한 기억과 그동안 자신을 지탱해온 주님의 만남을 소상하게 증언했다.
때는 정오였다. 한낮에 더 밝은 빛을 보았다고 했다. 또 다른 빛이었다. 나는 빛이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던 그 빛을 본 것이다. 그 강력함에 그들은 그 자리에서 엎드러졌다. 그리고 히브리 말로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는 음성이 들려왔다. 바울은 이십사 년이 지났지만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욱 또렷이 다가왔다.
주님께서는 그의 이름을 두 번이나 불렀다.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부르심이었다. 두려움과 탄식처럼 그의 입에서 쏟아졌다.
당신은 누구이십니까? 이 질문이 사울이 바울이 되는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그는 성도들을 핍박했는데 주님께서 박해를 받으셨다고 하셨다. 스데반을 향하여 날아오는 돌을 온몸으로 맞고 계셨던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행된 무지한 자신의 죄를 묻고 계셨다. 그는 땅에 고꾸라졌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신념처럼 지켜온 율법이 함께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그토록 열두지파가 기다려온 메시야가 바로 그들 앞에 계셨음에도 그들은 십자가에 못을 박고 말았다. 그것 역시 하나님께서 연출하신 드라마였다.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 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전하시리라” 사도행전 26:23
이것이 바로 복음의 역설이었다. 온 나라가 그리스도가 오시길 기대했다. 다윗과 같은 용맹스러운 지도자가 등장해 타민족을 정복하고 강대한 독립 국가를 세울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고난의 종으로 이 땅에 오셔야만 하셨다. 인생들이 겪어야할 모든 고통을 감내하셨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간 죽음까지도 체험하셨다. 그리고 다시 살아나셨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히브리서 4:15
같은 아픔을 거치셨기에 우리들의 형편과 처지를 너무도 잘 아시기에 우리의 필요를 너무나 정확하게 알고 계신다. 그분이 나의 목자가 되시기에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신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왕으로서 위엄을 버리시고 궁궐의 안락함도 포기하셨다. 서민의 자리에서 지난 30년간 가족을 부양하시기 위해 목수 일을 놓지 않으셨다. 못 박힌 손에 굳은살이 보인다. 교회를 개적하고 연약한 재정을 위해서 손수 천막 만드는 일을 하였던 사도 바울의 억센 손과 많이 닮아있다.
그분께서 다시 살아나셨다. 이것이 바울이 죽을 때까지 부를 노래였다. 그가 끝까지 포기할 수 없는 부활의 노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