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 7일 화요일
사도행전 25:13-27
“하늘 길을 걸어가는 자”
벨릭스 총독의 어정쩡한 판결로 인해 이년 째 지리한 재판이 계속되고 있었다. 베스도 총독이 부임하자 말자 뜨거운 감자였던 바울의 문제가 다시 수면위로 떠올랐다. 정치현안을 살피기 위해 예루살렘을 방문했을 때, 종교지도자들은 이때를 놓치지 아니하고 바울의 문제를 다시 들고 나왔다.
로마의 법대로 처리하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발끈하고 나선 유대인들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또 다른 대책이 필요했다. 그때 마침 베스도의 총독 취임을 축하하기 위해서 유대 북쪽을 다스리고 있던 분봉왕 아그립바 2세와 그의 아내 버니게가 가이사랴를 방문했다. 그들에게 정치적 현안을 의논하게 된다. 헤롯 아그립바는 예수님이 탄생하셨을 때, 유대를 폭정으로 다스렸던 헤롯 왕의 손자였다. 당시 실제로 유대를 다스리고 있던 총독과 왕은 정치적 동업자 관계였다.
한편 이 편지의 최초의 수신자였던 데오빌로 각하에게는 자신의 정치적 동료들의 이야기였다. 그동안 자신이 살아왔던 삶의 궤적과 별다를 바 없었다. 이제 그는 제 삼자의 눈으로 로마 정치세계를 보게 된 것이다.
누가는 하나님 나라의 정치와 세상 나라의 정치가 달라야함을 분명한 선을 긋기 위해서 바울의 재판과정을 석장에 걸쳐 세세하게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벨릭스와 베스도는 정치적으로 같은 길을 걷고 있었다. 그의 고백대로 로마의 법에 의해서는 아무런 죄를 찾을 수 없었지만 유대인들의 민심을 고려해서 그는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것이다. 진리보다는 실리를 선택했다. 힘없는 한 사람보다 다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세상은 그것을 지혜라고 말한다. 그렇게 사는 것이 정당하다고 항변한다.
공직자들의 청문회에서 드러나는 단골메뉴가 투기와 자녀 교육을 위한 위장전입이다. 누구하나 이 문제를 그냥 지나치질 못했다. ‘잘 살아보세’를 외치던 시대였다. 잘 산다는 말 자체에 오해가 있었다.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고 정의 되던 시대였다. 투기를 못하면 바보라고 여겨지던 시대를 살았던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달라야만 한다. 이년간의 억울한 옥살이에도 그는 원망하지 않았다. 오로지 그의 꿈은 로마였다.
세상과 짝한 정치인들의 부도덕이야말로 지탄을 받아야 마땅하지만 바울은 오히려 그것을 이용해 황제 앞에 상고하기로 결정한다.
세상의 높은 위엄과 권세 앞에서 그는 초라한 죄수에 불과했다. 모든 사람의 시선이 아그립바 왕과 베스도에게 쏠려 있을 때, 하나님의 시선은 이년간의 수감생활에서 초췌해진 바울에게 머물렀다. 그를 통해 전 세계를 품으신 것이다. 로마 정치인들의 허세와 불의를 통해 바울의 발걸음을 로마로 향하게 하신다. 그는 이 세상에 발을 딛고 살아가고 있지만 하늘 길을 걸어가는 하나님의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