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 4일 토요일
사도행전 24:22-27
“아는 것과 믿는 것”
벨릭스는 이미 팔레스타인을 10년 째 통치하고 있었다. 신정국가였던 유대는 모든 총독들이 꺼려하는 다루기 힘든 식민지 중 하나였다. 모든 공권력보다 그들의 심중에 자리하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절대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유대를 다스리기 위해서 모든 정보력을 동원해 민심을 살피는 과정에서 얻은 지식이었을 것이다.
벨릭스는 더둘로의 말을 듣기 이전에 이미 그리스도교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었다. 그는 더 많이 알고 있었고 더 자세히 알고 있었다고 했다. 그의 아내가 유대 여자였기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있기도 하지만 당시 들불처럼 번진 그리스도교에 대해서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음은 눈에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공식적인 재판을 거쳤으나 바울에게 죄를 물을 수 없었던 벨릭스 총독은 바울을 감금하는 데 그쳤다. 유대인들의 반감을 사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그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는 개인적으로 사도 바울을 불러서 그리스도 예수 믿는 도를 들었다. 세상과는 다른 절제를 이야기했다. 의를 말했다. 끝으로 심판을 강론했다. 그때 벨릭스의 마음에 두려움이 엄습했다.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삶과는 전혀 다른 심판에 대해서 그의 마음이 찔렸다. 더 듣지 못하겠다고 했다. ‘지금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고 했다.
벨릭스는 총독이라는 지위를 가졌음에도 그는 가장 불행한 사람이었다. 복음에 가장 근접해 있었으나 그는 십자가 왼편 강도처럼 구원의 기회를 놓쳐버리고 말았다.
회개는 후회가 아니라 돌이켜 새로운 삶으로 돌아서는 것이다. 벨릭스는 지식적으로 그리스도 예수 믿는 도를 알았으나 믿지 않았다.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거리가 가장 멀다는 말처럼 그의 불행이었다.
“동시에 또 바울에게서 돈을 받을까 바라는 고로 더 자주 불러 같이 이야기하더라.“ 사도행전 24:26
벨릭스를 통하여 세상을 만나다.
‘동시에’ 그는 한 발은 영생에 또 한 발은 물질에 양다리 걸친 채로 그 후에도 바울을 불러서 교제를 나눴으나 더 이상의 진전은 없었다. 그를 통해 돈을 얻을 목적을 가졌기 때문이다. 세상은 그런 것이다.
“옛 STX그룹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정옥근(63) 전 해군참모총장이 통영함 납품 비리 혐의로 추가 기소됐다. 당시 정 전 참모총장에게 사례금 명목으로 금품을 전달하는 과정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전 해군 대령 김모(63)씨와 음파탐지기 납품업체 H사의 운영자 강모(44)씨도 기소됐다.”
오늘 아침 조간에 실린 기사이다. 군인으로서 최고의 자리에 올라서서 고작 한 일이 돈 받고 나라를 지켜야할 무기의 치명적인 약점을 덮어주는 일이었다.
비단 한 개인에게 국한 된 일인 것인가? 온 나라가 물질만능이라는 덫에 쓰나미처럼 밀려가는 이 나라의 중심에 나도 편승하고 있지는 않은지 고민한다.
후회하지 않는 인생이 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주님 앞에 서는 날, 할 말 있는 인생이 되기 위해서
늦은 밤 버나드 쇼의 묘비명을 읽는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