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엄한 경호를 받으면서 가이사랴로 압송된 사도바울의 재판이 닷새 만에 재개되었다. 바로 눈앞에서 바울을 놓친 대제사장과 장로들은 예루살렘에서 가이사랴까지 족히 100km가 넘는 거리를 한걸음에 달려왔다. 그들은 당시 예루살렘의 저명한 변호사 더둘로를 고용했다. ‘칼’로 죽이려던 계획을 바꿔 ‘말’로 바울을 죽이려고 전문 변호사까지 동원한 것이다.
그들이 고발한 죄목은 세 가지였다. 유대 사회를 혼란에 빠뜨린 자요,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고 했다. 더 나아가 자신들이 신성시 하는 성전을 모독한 자라고 했다. 자신들에게 국한된 종교적인 문제를 로마사회를 어지럽히는 정치범으로 몰아갔다. 더둘로가 현란한 말솜씨로 사회적 격리가 필요한 자라며 고소를 하자 함께 따라온 유대인들도 가세하며 바울의 죄를 물을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발언 기회를 얻은 사도 바울은 절제된 목소리로 자기변호를 시작했다. 조목조목 따져가며 무고함을 주장 하였다. 고소인들의 주관적인 고발과는 달리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증거들을 통해 자신의 무죄함을 변호하였다. 내가 예루살렘에 온지가 열이틀 밖에 되지 않았기에 그 짧은 시간에 무리들을 선동했다는 것 자체가 무리라고 했다. 더더구나 고발인들은 자신이 회당이나 시중에서 소동하게 하는 것을 직접 본 목격자들이 아니라고 했다.
자신 역시 동일한 유대교 신자였으며 저들과 똑같은 소망을 가지고 살아왔다고 고백했다. 자신이 믿는 부활의 소망 역시 저들 또한 인정하는 바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악인과 의인의 부활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썼다고 했다.
또한 자신이 예루살렘에 온 목적은 기근으로 말미암아 어려워진 예루살렘 성도들을 돕기 위해 준비한 구제연보를 전하기 위함이었다고 강변했다.
자신이 무고하게 심문을 받는 이유가 저들이 믿고 있는 부활 때문이며 예수께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는 사실을 전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베드로전서 5:8∼9
제사장 무리들은 합법을 가장해서 바울을 무너뜨리려고 했다. 오늘날도 사단은 다양한 경로로 성도들을 넘어뜨리려고 한다. 교묘하게 파고드는 인터넷이 그 중 하나이다. 쓰나미처럼 범람해 오는 성의 바다에서 성도들은 孤軍奮鬪(고군분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 百尺竿頭(백척간두)에 서있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스팸 메일을 통해 연일 공습경보를 알리고 있다. 이 어려운 현실 앞에서 무디 선생의 말씀이 힘이 된다.
“새가 머리위로 지나가는 것은 막을 수 없지만, 내 머리 위에 앉아 둥지를 트는 것은 막을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절대 다수의 파상적인 공세에 대해서 이처럼 의연히 대처할 수 있었던 이유도 동일했다. 근신하여 깨어 있었다. 주님께서 그의 곁에서 바울의 손을 붙들고 계셨다. 그리고 바울의 최종적인 소망이 부활에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