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큐티 본문은 누가복음 9장 51-62절 말씀입니다.
예루살렘을 향해 가시면서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아시고
제자들이 그들을 멸하기를 원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꾸짖으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기를 원하지만 그들의 열성을 뒷받침하는 헌신하려는 자세가
따라주지 못합니다.
사마리아인들이나 예수님을 따를 준비가 안 된 사람들보다 제자들이 나은 점이 있기는 한 걸까요?
왜 예수님께서는 머리 둘 곳조차 없는 걸까요?
제자들의 사마리아 사람들에 대해 앙심을 품는 행동은 그들의 평소 태도와는 배치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러 가신다는 말을 제자들에게 두 번씩이나 하셨지만 그들은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베드로가 예수님을 위한 십자가를 질 것을 거부하고 이에 예수님은 그를 “사탄”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는 것을 원망하는 제자들의 생각을 알 수 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처럼 그들은 십자가와 예루살렘이 빠진 예수님에 관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제자들이 사마리아인들을 향해 분노를 터뜨린 것은 사실은 예수님을 향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나중에 베드로를 책망하신 것과 같이 제자들을 꾸짖으셨습니다.
예수님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커다란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마땅히 살아갈 곳도 없고 죽은 사람을 묻지도 못하며, 가족들에게 작별인사도 하지 못합니다.
십자가를 지러 가시는 예수님을 따라가야 하고 그리고 자기 자신의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예수님의 부름은 고통과 죽음을 거쳐 새로운 생명으로 가는 길입니다.
어제 수요예배에서의 담임 목사님의 설교 주제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제가 언제나 항상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내 진정한 집이 하나님 나라이고 천국이라는 것을 항상 믿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항상 쉼이 없고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것 같고 낯선 곳에 이방인 같다는 생각을
항상 하게 됩니다.
그러나 내 삶의 반환점을 돌 때까지도 그 쉼 없는 상태와 하나님을 연관해서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것을 항상 이곳 저 곳으로 이사를 다녀야 하는 군인 가정에서 자란 환경과
연결시키곤 했습니다. 편안한 휴식이 없는 삶을 그러려니 받아들이고 새로운 곳으로
옮겨가는 것에 순응하고 이사를 다니던 사이사이 여기 저기 여행을 다니곤 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유럽으로 가서 여름 내내 열 두 나라를 혼자서 배낭여행을 했습니다.
이후 대학을 자퇴하고 다시 유럽으로 갔습니다. 이번에는 여자 친구와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여행을 했습니다.
캐나다를 떠나서 미국으로 갔고 학생들을 데리고 이탈리아로 여행을 갔습니다.
또 스페인을 순례여행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캐나다 갔다가 다시 한국, 인도를 거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면서 중국, 일본,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그리고 태국을 여행했습니다.
몽고와 러시아를 횡단하는 열차를 타기도 했습니다.
여름동안 북극의 군빙(빙하)을 연구하는 곳에서 일을 하기도 했고 캐다다 횡단 여행을
3번이나 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믿음이 자라났지만 내 안의 쉼 없음은 중단되지 않았는데
예수님은 저에게 평안이 없게 하는 것만이 공허한 여행중독을 끊어지게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배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 여행과 나들이는 돈과 에너지의 낭비일 뿐입니다.
담임목사님은 어제 수요 설교에서 이 점을 경고하셨습니다.
오늘 큐티 본문은 여행이 얼마나 하나님과 나의 관계를 방해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평안함이 없는 내 마음은 하나님이 저를 예배로 부르시는 소리입니다.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저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낭비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을 따르고자 했던 세 사람과 마찬가지로 저 역시 다른 일들로
분주하게 살아왔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면서도 세상 여기저기를 여행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이것에 관해서 절충과 타협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십니다.”(51절) “건성으로가 아닌 굳게 결심하시고“입니다.
나의 예배에 대한 굳은 의지의 부족은 내 삶의 의미의 많은 부분을 상실하게 했습니다.
물론 산다는 것은 여행과도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에게로,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을
위해서 해야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것이 제가 많은 광경들 가운데 보지 못하고 놓쳐버린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향하는 마지막 목적지이시고 그 분에게 참고 인내함으로써 내가 묻거나 상상한
것 이상의 것을 보여 주실 것입니다.
적용: 제가 하나님에게로 갈 수 있도록 내 안에 쉼 없음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겠습니다.
큐티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인내로 순종하겠습니다.
주님! 당신과 함께 하는 천국을 향한 여행의 과정에 즐거움이 넘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