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라고 할 자격도 없습니다.
<그는 너무도 배가 고파 돼지가 먹는 쥐엄나무 열매로 배를 채우려 했지만 그것마저 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제서야 그는 제정신이 들어 말하였다. '내 아버지의 집에는 양식이 풍부하여 많은 일꾼들이 먹고도 남는데 나는 여기서 굶어 죽는구나!
그렇다. 아버지에게 가서 이렇게 말씀 드려야지 :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어 이젠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할 자격도 없습니다.
다만 저를 일꾼의 하나로 써주십시오.'
그리고서 그는 일어나 아버지에게 갔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가 멀리서 오고 있는 것을 보고 측은한 마음이 들어 달려가서 아들을 얼싸안고 입을 맞추었다.
그러자 아들은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어 이젠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할 자격도 없습니다. (다만 저를 일꾼의 하나로 써 주십시오.) 라고 하였다.>(누가복음 15:16∼21)
오늘 본문은 너무나 잘 알려진 탕자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재산 중 자기의 몫을 달라고 하여서 이국으로 가서 허랑방탕한 생활을 하여 재산을 다 탕진하고 이제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려 했지만 주는 사람이 없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생각해 낸 것이 아버지 집으로 가서 이제는 품꾼으로 써달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자 멀리서 아들이 오는 것을 보고 아버지는 측은한 마음이 들어서 달려가서 얼싸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아버지 제가 죄를 지어서 아들이라고 할 자격이 없으니 일꾼의 하나로 써달라고 합니다.
오늘의 탕자 이야기를 묵상하면서 내가 돌아온 탕자임을 고백하게 합니다.
예수님의 복음을 어렸을 적에 들었지만 가정에 이런 이유로 복음을 떠나서 제멋대로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학생시절에 삶의 의미를 찾고자 친구를 따라 전도관, 군대에서는 통일교회를 기웃거렸습니다.
믿음의 자매를 만나 이후에도 별로 달라진 것은 없었습니다.
그러다 아브라함 선교회에서 김형제님을 만나 인격적으로 주님을 만났다고 하였지만 삶의 모습은 그대로 였습니다.
머리에서 가슴까지 내려오는 시간이 30년이 걸린다고 하였는데 제가 그런 사람인 것 같습니다.
아직도 부족하지만 그래도 주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복음을 위하여 살려고 하니 주님의 은혜임을 고백하게 만듭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도록 만들어주시고 나를 인도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합니다.
<그는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제가 여러 해 동안 아버지를 섬겨 왔고 아버지의 명령을 어긴 일이 없는데도 제게는 친구들과 함께 즐기라고 염소 새끼 한 마리도 주신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창녀들과 놀아나다 아버지의 재산을 다 없애 버린 동생이 돌아왔다고 아버지는 살진 송아지까지 잡으셨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대답하였다. '얘야,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가 가진 모든 것이 다 네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네 동생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잃었다가 다시 찾았으므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29∼32)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늘 함께 생활을 하고 있지만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며 살아가는 큰 아들의 모습 중에 이런 모습이 나에게 많았음을 고백합니다.
주변에 신앙생활을 하지도 않고 잘 사는 친구가 부럽기도 하고 하나님을 잘 믿고 견고하게 서는 정형제님의 삶도 도전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내가 그 사람의 인생을 살아갈 수가 없고 나는 나의 인생을 살아가야 할 따름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모시고 살아가고 있으니 무엇이 부럽고 못 마땅한 일입니까?
내 마음속에 깊은 곳에 탕자처럼 내멋대로 살아가려고 하는 욕망이 솟아오르며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어떻게 살면 잘 살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늘 내 마음에 있습니다.
그러나 어버지는 크신 은혜로서 이러한 나를 용서하시고 받아주심을 말씀을 통하여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말씀을 통하여 내 속에 이러한 욕망들이 자라고 있음을 깨닫게 하여 주시어 아버지 앞으로 나아가게 만듭니다.
이제는 부러운 것이 많이 줄어들었고 담대하게 아버지 앞으로 나아가게 되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늘 나를 바라보시며 측은한 마음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함께 동행 하시는 하나님이 계심을 생각할 때 오늘도 활기차게 사는 이유를 발견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