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견이 분분했다.
사두개인과 바리새인이 당시 종교계의 양대 산맥이었다. 그들 중에 상당수가 바리새인임을 안 바울은 큰 목소리로 외쳤다. 나도 바리새인이요 날 때부터 바리새인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화두를 던진다. 내가 죄가 있다면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로 말미암아 내가 심문을 받고 있다고 했다.
당시 바리새인들은 부활을 믿고 있었다. 그러므로 예수의 부활을 증거 하는 것이 잘못이라고 말하는 것이 바로 모순이라고 역설하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고발하고 심지어 죽이려고 했지만 바로 그 앞에서 복음을 증거 했다. 바울은 당당하고 의연했다.
그에 반해 사두개인들은 현실주의자들이었다. 부활을 믿지 않았다. 바울은 이러한 청중들의 성향을 이용하면서 복음을 전했다. 바로 자신이 같은 바리새인임을 강조했다. 나도 당신들과 똑같이 교육 받았던 한 사람이라고 그들과 동일시했다. 이러한 바울의 전략대로 바리새인과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개인과 충돌이 일어나게 된다.
바울의 죄목을 밝히려고 공회가 소집되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큰 분쟁이 생기자 바울을 다시 영내로 피신을 시킨다.
객관적으로 보면 바울은 자신의 몸 하나 가누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그러나 그 사이를 비집고 복음을 전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는지 항상 복음을 전했다. 때로는 지혜롭게 또는 무모하리만치 복음을 전한 것이다.
산헤드린 공회에서 바울이 외친 복음이 나에게 오기까지 자그마치 이천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기다림이었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이었다. 당신의 백성을 찾으시는 하나님의 열심이었다.
수많은 군중들 앞에서 자신의 편은 아무도 없었다. 오직 하나님 편에 선 바울의 외로운 외침에 가슴이 먹먹하다.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의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사도행전 23:11
하나님께서 그 외로운 밤에 친구가 되어 주셨다. 감옥에 갇힌 그의 곁에 계셨다. 그리고 그에게 사명을 맡기신다. 그는 더 이상 외롭지 않았다. 고개를 들어 로마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