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 27일 토요일
사도행전 21:37-22:11
“바울의 간증집회”
아이러니하다. 로마의 공권력에 의해 바울은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살기등등한 유대인들을 향해 복음 증거를 향한 의지를 꺾지 않았다. 헬라말로 천부장에게 자신의 신분을 알렸다. 침착한 목소리로 자신의 출신과 민족을 거론했다. 맨 마지막에 다소의 시민임을 밝힘으로써, 애굽인 반란군 지도자라는 오해를 불식시켰다.
바울은 자기변호에 그치지 않았다. 자신이 로마 시민이란 말에 의문을 가진 천부장의 마음을 비집고 들어갔다. 동족 유대인들을 향해 발언할 기회를 요청했고 방금까지 자신을 죽이려 했던 유대인들을 향해 복음을 증거 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그가 히브리말로 말함을 듣고 더욱 조용한지라 이어 이르되” 사도행전 22:2
발언 기회를 얻은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친숙한 히브리어로 청중들을 ‘부형들’이라고 부르면서 경청을 유도했다. 정통 유대인으로서 손색이 없는 성장 과정과 가말리엘에게서 받은 교육, 그리고 그리스도인을 죽이기까지 율법 준수에 열정적이었던 지난날을 소개했다.
바울의 자기변명의 초점은 다메섹의 경험이었다. 저주를 받아 죽었다고 생각했던 나무에 달린 예수님이 자신 앞에 나타난 것이다.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라는 음성에 그는 고꾸라졌다. 이러한 경험이 그동안 그를 지탱했던 율법과 선민사상에 대한 바울의 생각을 무너뜨렸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전하는 전도자로 거듭나게 되었다며 담담히 말을 이어갔다.
바울의 삶은 오해의 연속이었다. 유대인들에게는 민족의 반역자요, 모세의 율법을 파괴하는 자요, 성전을 훼방하는 자였다. 로마인들에게는 4천 명의 자객을 데리고 무장투쟁을 벌인 과격분자로 심문을 당했다. 그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하나님 나라만 전했을 뿐인데, 세상은 바울을 가장 위험하고 혼란을 야기하며 체제를 전복하는 자라고 바울을 향해 돌을 던졌다.
그의 삶은 투쟁이었다. 그리고 멈추지 않았다.
피투성이가 된 몸으로 그가 외치는 메시지는 복음을 위한 지혜였고, 복음을 위한 용기였고, 복음을 위한 사랑이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어떤 처지에 있든지, 주와 복음을 드러내기 위해 애썼던 믿음의 용사였다.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디모데후서 4:1-2
그의 고백대로였다. 디모데를 향해서 엄히 명했던 그 말씀대로 똑같은 삶을 살아간 바울의 간증을 듣는다.
사도바울의 혈관을 타고 흐르는 복음의 피는 이천년의 세월을 넘어 달려온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었다. 죽을 고비 앞에서도 당당히 외치는 복음의 노래를 들으며 하루를 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