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큐티 본문은 누가복음 7장 36-50절 말씀입니다.
한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저녁식사에 초대하지만 관행대로 손님의 발을 씻기고 입을 맞추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창기인 한 여자가 예수님의 발을 씻어 드리고 눈물과 머리카락으로 닦고
발에 입 맞추고 비싼 향유를 부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은 비유로 이야기 하십니다.
그 비유는 빚을 탕감 받은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창기인 여자에게 그녀의 죄가 사함을
받았으며 그녀의 믿음이 그녀를 구원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어떻게 창기가 바리새인의 저녁식사 자리에 들어갈 수 있었을까요?
제 아내와 저는 우리를 결혼으로 이끌어준 이 성경구절을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때 저는 인도에 있었고 아내는 한국에 있었습니다.
우리는 전화와 이메일을 통해서 큐티 나눔을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옥합이라는 말에 관심이 갔고 그것에 대해서 묵상하면서 우리의 옥합은 향유가
아닌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알 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힘들었던 과거의 삶 때문에 앞으로도 행복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발에 향기가 없는 두려움의 옥합을 부었으며 그렇다는 사실을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희망을 보여 달라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결혼하는 과정이 정말 힘들고 어려웠지만 결코 우리가 두려워하던 행복하지 않은 상태에
머물러 있게 하지는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말씀을 읽으면서 마지막 부분의 구절인 48절 말씀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 구절은 정중한 예절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친절을 예수님께 베푼 여인과 예의가 부족
하며 천한 여자에 대해 정죄하는 태도를 가진 바리새인 시몬을 비교하시면서 시몬에게
예수님께서 결론적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시몬에게 말씀하시기를 “그의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그리고 나서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47절)” 하고 덧붙이십니다.
오늘 구절의 모든 말씀들 중에서 이 구절이 유일하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제가 이해하고 있는 회개와 용서와 모두를 하나로 묶는 사랑에 관한 하나님의 메시지의
방향과는 반대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다시 여러 번을 읽고 순서도 바꿔보고 하니까 다음과 같이 그 뜻이 정리되었습니다.
첫 번째 문장은 “그녀가 많이 사랑했기 때문에, 그녀의 죄가 용서를 받았다”이런 뜻으로
해석할 수 있었는데 원래 써진 뜻 그대로 분명하게 그 뜻이 왜곡되지 않고 전달됨을
알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문장은 그 순서를 바꾸어서 읽으니, “사랑을 적게 한 자는 사함을 받은 일이
적으니라” 이런 뜻이 되는데 저는 이 것을 보고 순간 멍해졌습니다.
갑자기 제가 바리새인 시몬이 된 것 같았습니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저는 분명히 사랑을 적게 한 것이 맞고 그래서 나의 죄에 대한
용서를 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 구절이 이해되자 딸 에리카가 불현 듯 생각이
났는데 제가 그녀를 사랑해 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그녀에게 화를 내거나 실망하거나 했었습니다.
딸을 사랑하기는 했지만 최근까지도 나 자신과 잘못된 행복에 관심을 집중하느라
그녀를 많이 사랑해 주지 못했습니다.
딸아이는 오늘 여자가 예수님을 저녁식사 자리에서 사랑했던 것과 같이 저를
사랑했지만 저는 딸을 그렇게 많이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그것 때문에 정말 가슴이 아픕니다.
저는 회개의 의미로 그녀에게 대학 학비를 지원해 주고 전화통화와 편지도 하고
매일 그녀를 위해서 진심의 기도를 했습니다.
제가 그녀에게 사랑을 적게 준 것이 그녀를 많이 힘들게 했습니다.
적용 : 내 딸에게서 옥합을 찾도록 하겠습니다.
주님! 적은 사랑이 아닌 넘치는 사랑을 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