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8;16-25
등불, 어머니와 동생들, 광풍.
등불이 등불의 역할을 다하지 아니하고, 겸손을 가장하여 그릇 밑에 숨으면 등불은 꺼지고, 고등교만으로 평상 아래로 들어가면 역할과 사명을 다하지 못합니다. 등불은 다른 사람들이 잘 볼 수 있도록 비추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있는 줄 아는 한 달란트마저 빼앗길 것입니다.
주께서 나에게 주신 등불은 말씀묵상 같습니다. 뛰어나지는 못하지만 내가 할 줄 아는 다른 것들보다 좋아하고 재미있습니다. 물론 내가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지혜로 도와주심을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주의하지 않고, 집중하지 않고, 겸손하지 않으면 주께서 언제든지 거두어 가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나는 말씀을 묵상하고 깨달아 나만 보고 있습니다. 그릇으로 덮듯이 필기하고 덮어버립니다. 평상 아래에 두듯이 어쩌다 만나는 사람에게만 겸손한척 살짝 얘기합니다. 적용도 못합니다.
등경위에 있는 것은 십자가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픈하고 오픈하면 수치도 비난도 조롱도 당할 수 있지만, 주님께 돌아가려는 사람들에게 작은 빛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사 입다를 묵상할 때 그의 숨은 실력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나도 기다리며 실력을 쌓고 싶었습니다. QT를 빠지지 않고 했습니다. 율법주의 경건주의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QT할 때마다 보이고 들리는 것이 많고 풍성해서 안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보여도 어쩔 수 없습니다.
나의 재능이 아니고 주님이 주신 달란트로, 더 이상 숨기거나 감추지 않고 주님의 때에 드러나고 나타나게 하실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나의 교만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나는 스스로 삼가고 주의하여 겸손해야만 합니다. 말씀묵상은 겸손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말씀이 있는 자, 풍성한 자가 되어 더 받기를 바랍니다.
혹여 교만하여 그릇으로 덮거나 평상 아래로 들어가서, 있는 줄로 아는 것까지 빼앗기지 않도록 늘 깨어 분별해야 하겠습니다.
중략...
가끔 돌아가신 부모님이 생각납니다. 인간적으로는 나 같은 불효자가 없을 것이고, 영적으로는 내가 무엇을 도와드렸나 하면 없습니다. 억지로 꺼내자면 내가 다니던 교회에 부모님과 가족들이 다니게 되었다는 것, 하지만 그것도 내가 손을 붙잡고 전도의 열심을 냈던 기억이 없습니다. 그냥 내가 먼저 다니게 되었다는 것뿐입니다. 내가 자식으로 동생으로 아비로 삼촌으로 여러 가지 부끄러운 인생을 살았습니다. 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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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나는 지금도 광풍이 두렵고 무섭습니다. 믿음의 수준이 아직 안 되고 있습니다. 주님은 갈등하는 나에게 늘 물으십니다. ‘내가 준 너의 믿음이 어디 있느냐?’고...
나는 평생 주님의 행하심을 두렵고 놀랍게 여기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지만, 그가 누구신지, 바람과 물도 그 앞에서 왜 순종할 수밖에 없는지 알고 믿고 갑니다.
나의 하나뿐이신 주님을 사랑하고 사랑합니다.
주님.
겸손을 가장한 교만이 있습니다. 고등교만이 나에게 있습니다.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내 자리에서 등불의 역할을 잘 할 수 있게 하옵소서.
육친의 관계를 인도하시고 형제들의 관계를 구원으로 보게 하옵소서
내 삶 가운데 살아서 역사하시고 주관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Jesus Name Amen
적용>QT나눔 올리기(올리는 것이 언제부터인가 망설여지고 두려워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