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 25일 목요일
사도행전 21:17-26
“예루살렘에 이르니”
바울이 그토록 대망했던 예루살렘에 도착했다. 근 오십일이 걸린 여행을 마치고 오랜 제자 나손의 집에 들어갔다. 아직 여독이 풀리지 않았지만 바로 그 이튿날 바울 일행은 야고보 사도를 찾아갔다. 함께 한 장로들 앞에서 이방 땅에서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낱낱이 보고하였다. 듣는 모두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이후 지도자들이 바울에 대해서 우려를 표명했다. 예루살렘 교회의 유대인 성도들 중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여전히 율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바울의 이방선교가 율법을 배반하고 있다고 심각한 오해를 하고 있었다. 진리보다 전통을 앞세운 채, 그릇된 열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열심 있는 자들이었다. 당시 수만 명의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아직도 이 율법의 틀에서 머물러 있었다. 연약한 그들을 위해 정결의식을 제안해 온 것이다.
타협이라는 것은 어떤 일을 서로 양보하여 합의하는 것이다. 비슷한 말로 서로 다른 사물이나 의견 관점 따위를 알맞게 잘 조절하여 서로 잘 어울리게 하는 것은 절충이라고 한다. 사도 바울은 그들의 권면을 기꺼이 받아드렸다. 서원한 네 사람의 정결예식 비용을 지불함으로서 자신 역시 율법을 지키는 자임을 공개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여기서 문화를 존중하면서 복음을 전하고자 했던 바울의 지혜를 배운다. 고린도교회의 우상 제물에 대하여 권면하면서 하나님의 창조질서 아래서 무엇이든 먹을 수 있지만 자신의 자유로 인해서 믿음이 연약한 자들이 실족한다면 평생 고기를 먹지 않겠노라고 선언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국교회의 전통으로는 술과 담배를 금했다. 술과 담배가 구원하고는 무관하지만 복음이 이 땅에 들어왔을 때, 술과 도박으로 인하여 패가망신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축첩도 성행했던 시절에 절제를 가르치기 위해서 선교사들에 의해서 정해진 금기사항이 전통이 된 것이다.
전도를 하다보면 술 담배 문제 때문에 교회 출석을 꺼리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나는 그럴 때마다 그런 것은 하등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교회를 나오면서 차차 그런 것들은 멀리할 수 있게 된다고 권면한다.
그리고 한 가지 술과 담배를 안 하면 신실한 성도인 것처럼 오해하는 것도 문제이다. 눈에 보이는 것을 금했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탐심, 간음 등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잘못을 저지르지만 눈에 보이지 않기에 무심히 넘어가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만 한다.
비근한 예로 우리 집도 예수를 믿으면서도 한동안 제사처럼 음식을 차려놓기도 했다. 그러나 믿음이 자라나면서 그것이 부질없는 일임을 깨닫고 이제는 온전한 예배로 바뀌었다.
이러한 타협은 지난 번, 이방 선교를 위해서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했던 일과 동일한 예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같은 물건이라도 포장에 따라 값이 다르게 매겨지는 것처럼 복음의 본질은 변할 수 없지만 전하는 방법의 다양성을 인정해야한다. 받아드리는 사람들의 편에서 생각하고 그들의 문화를 수용하는 바울의 순종을 통해서 참된 지혜를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