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3 용서받은 여인
누가복음 7:36-50
김양재 목사님 수요설교를 가끔 아주 정리를 잘 해서
홈페이지에 올려주시는 집사님이 계셔서 참 감사합니다.
그 글을 엄마가 카톡으로 보내달라고 하셔서
저의 폰에 한번 옮겨서 빈칸을 정리해서 보내드리려고 하던 중에
욥기의 설교 부분이 나왔습니다.
뜨끔했습니다.
욥의 친구들로부터 배울수 있는 공통점은 '상담은 그렇게 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상담, 처방으로 "예배에 올인하세요, 큐티하세요, 자기 죄를 봐야 합니다, 자기 삶의 결론입니다"하고
'하늘의 언어'를 쓰는 것은 상대를 공감해 주지 못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하는 것은 그 사람의 말을 경청하고 아픔을 공감해 주어야 한다.
"함께 슬퍼하는 것은 3배 어렵고, 같이 기뻐하는 것은 7배 어렵다"
욥과 그 친구들은 의롭고 나쁜 짓 잘 안하는 사람인것 같은데,
하나님께서 욥이 동방에서 가장 온전하다고 정직하다고 하셨어도
자기 죄 못보고 정죄 잘 하는 부류와 어울린 것이 욥의 악이다.
이런 말씀에 얼마나 찔림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저의 이모 집에 애완동물처럼 애지중지 키우는 닭이 있는데
동네 개가 닭 세마리를 물어 죽였습니다.
이모, 이모부, 사촌까지 너무 충격받고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며
평소에 우리집에서 함께 예배하던 이모가
예배보다 닭을 잃은 일에 너무 상심하는 모습에 공감하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내 생각에 옳다고 "하늘의 언어"를 말한다고 하지만
공감이 우선되지 못한 '정죄질' 뿐이었던,
죄 인줄도 모르고 자연스럽게 죄를 짓는 내 모습이 깨달아져서 깜짝 놀랐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몸이 아파서 예수 믿은 이후로
이모부의 미움을 의도치 않게 사게 되었습니다.
성실하고 착한 이모 댁의 가족에 비해서
제가 11세부터 아픈 이후로 우리 집은 가정 불화가 심했고
폭력과 별거와 경제적 어려움까지 겪었던 우리는
예수님 한 분으로 즐거워하고 이모 집에 복음을 전했지만
우리 집은 이모부에게 죄인이고, 오백 데나리온 빚진 자일 뿐이었습니다.
제가 받은 죄 사함과 많은 빚의 탕감에도 불구하고
왜 저는 바리새인처럼 이모 집의 슬픔에 공감하지 못하고 판단부터 하려고 했는지...
저는 어느 누구에게나 정죄받아도 마땅한 죄인이라고 생각하면서..
바리새인의 정죄하는 죄까지 지어 버렸습니다.
다음에 누군가가 아픔에 처하면
그 때는 꼭 함께 슬퍼하고 공감 먼저 해 주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애통하며 기도만 할 뿐입니다.
9년 전에 동생의 입시공부를 위해 서울에 집을 얻어
엄마와 저까지 함께 지내며 우리들교회를 다니게 되었는데
우리들교회 청년부, 여자목장에 참석하고 공동체 생활을 하다가
건강이 너무 나빠져서 예배도 가기 어려울 상황이 되어 지방에 내려왔습니다.
그 이후, 거의 산 송장처럼 누워서 지낸 지 5년쯤 된 것 같습니다.
엄마와 '하늘의 언어'가 통해서 감사하고 즐겁게 지내지만
22년간 백혈병(골수이형성증후군)으로 투병하며
누군가와 대화하는데 어려움을 느끼는 저에게 공동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자꾸 누군가를 찾고 싶어 합니다.
몸이 힘드니까 알던 사람과 지속적인 소통을 하기가 쉽지 않고
친구처럼 편한 관계로 지내는 사람이 없으니 외로움을 느끼며 지냅니다.
예전에 우리들교회 공동체에 있을 때에도 성실하지 못했던것 같지만,
지금에 와서 그 공동체가 얼마나 소중하고 그 시간이 귀한 시간이었는지 그립기만 합니다.
하지만 미숙했던 그때 저는 공동체에 실패했다고 느껴집니다.
그리고 나처럼 아프지만 예배를 사모하는..
어떤 공감대가 형성되는 사람과 사귀고 싶은 마음이 늘 있습니다.
나와 같은 부류의 사람은 찾고 싶지만
눈 앞에 아파하는 이모 집의 슬픔에 공감하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악하고 추하게 보이는지,
언제나 저는 제가 진 빚에 값을 것이 없는(42절) 죄인(39절)입니다.
저는 22년간 투병하며 살아왔던 시간이 힘겨웠습니다.
자살충동에 시달리고 예수님을 믿는다는 말을 하기가 부끄러울만큼 우울증이 심해서
죽고싶다는 말을 얼마나 쉽게 하고 살았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22년전에는 불치병이었지만
지금은 기술이 많이 발달해서 '반일치골수이식'이라는 것을 시도해야 하는 시점이 되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어릴 때는 의료보험 혜택도 없었지만
지금은 이식기술이 발달하고 의료보험 혜택도 받을 수 있어서 5%만 부담하면 된다고 합니다.
그래도 부담스러운 비용을 지불해야겠지요.
게다가 5년 정도를 거의 누워 지내고 체력은 90대 할머니보다 못하다고 느껴지고
혈액수치가 전체적으로 많이 나쁜 편이지만 혈소판이 정상이 15만, 혈소판 감소증 중증이 5만 이하이고,
만 이하가 되면 어디든지 자연적으로 출혈이 되며
당장 뇌출혈로 죽어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닐만큼 심각한 일인데,
저는 혈소판이 천, 2천으로 지낸지 3개월이 넘었습니다.
이식을 빨리 해야 하는 긴급한 상황이지만
철분중독이 심해서 이식조차 위험하다며 철분중독을 줄이는 약을 먹고 있는데,
구토와 설사와 통증 때문에 약도 잘 못 먹어냅니다.
혈소판이 낮은 탓인지 고관절과 다리에 통증이 있어서
소화를 위하거나 체력을 만들기 위해 걷거나 운동을 할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몸이 너무 힘들고 기력이 없어서 골수이식을 시작한다고 해도
독한 항암제와 많은 합병증을 견디지 못하고
저는 죽게 될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작년 까지만 해도 저는 이식해도 죽을텐데
집에 별로 남지도 않은 부모님 노후자금을 털어 이식하느니
병원에 수혈도 받으러 가지 말고 집에서 죽고싶다고 늘 그런 소리만 했습니다.
그런데 작년 겨울에, 아주 오랫만에 큐티인을 다시 보고는
제 평생 처음으로 이식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에게는 너무나 큰 변화였습니다.
그냥 있어도 죽고,
골수이식을 하며 끝까지 싸우더라도 별로 버티지 못해 죽는다 해도
이제는 마음이 변화되어 큐티하며, 내 죄를 보며, 죽는 날까지 싸우다가
누군가를 전도하고 영혼을 살려내다가 죽는 것이
제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복된 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교회 가자는 말은 해봤지만,
한번도 저의 입으로 복음을 전해본 적이 없었던 제가
세달 전에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에 예수님을 모르던 사람 두 분과
영접기도를 하고 천국으로 앞서 보낸 일도 있었습니다.
저는 글을 적는 일을 많이 어려워하고 힘들어 합니다.
한 번 이렇게 긴 글을 적고 나면 몇 일을 앓고 고통스럽습니다.
하지만 죽음을 눈 앞에 기다리고 있는 저에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요..
김양재목사님 설교를 듣고 혜옥 자매의 글을 다시 찾아 읽게 되었습니다.
죽음을 준비하며, 그 아름다운 자매의 나눔이
저에게 길을 비추어주는 것 같았습니다.
수많은 보석같은 큐티나눔, 자유나눔에 비해 저의 것은 너무 보잘것 없지만
말씀을 묵상하고 적용해서 나누는 것이 저에게 가장 귀한 향유를 드리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 나눔은 22년간 투병하며 많은 피해를 끼친 가까운 사람들에게
수많은 죄를 지은 제가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48절)" 하는 말씀을 들을 수 있게 하는
저만의 사랑(47절)함의 표현입니다.
그리고 제가 이식 전에 죽든, 이식을 하다가 죽든,
오히려 기적적으로 이식하고 살아나든
저의 힘들었던 22년의 투병 길에서
지금 이 순간 구원받고, 평안함(50절)을 누리게 됨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