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믿고 달려 온 예수님이 그 예수님이 맞을까요?
내가 들었다 믿은 그 말씀이 정말 그 성령님이 하신 말씀이 맞을까요?
내 아버지와 어머니가 평생 믿었다는 하나님이 정말 나랑 같은 하나님이 맞을까요?
세례요한은 당신 손으로 세례를 주었던 예수님이 정말 그 분이신지 의문을 가졌는데
(19절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내가 이리 의문을 갖는 것은 죄입니까?
부모의 잘못을 정죄하고 가족의 신앙을 비판하는 것일까요?
분명 내가 만난 예수님은
살기 위해 아히멜렉에게 거짓말을 하여 떡을 취한 다윗(삼상 21:1~6)이 만난 하나님이시며
삼촌 라반에게 속았던 야곱이 자신의 것을 찾기 위해 껍질 벗긴 가지를 양 떼가 와서 먹는 개천의 물 구유에 세워 양 떼를 향하게 하여(창30:37~43)도망치던 그 때에 길르앗 산까지 쫓아온 라반에게 나타나 현몽하신(창31:24) 하나님이시며
예레미야의 음성을 들으시고 그 원통함을 풀어 주셨고 그 생명을 속량하셨던(애3:58) 그 하나님이시라 믿고 살아왔는데
그 동안의 믿음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요?
내 믿음에 대하여 의심하고
부모와 형제의 믿음에 대하여 의심할 때가 많은 나는
오히려 요한의 의문에 위안을 받습니다.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일용할 양식과 머리 둘 곳을 위하여 열정을 다하며 살고 있는 것이 맞을까요?
세례를 받지 아니함으로 그들 자신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린 바리새인과 율법교사처럼(30절)
하나님이 주신 비젼을 잃어버리고 주저앉아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리하여 그일라로 내려가고 다시 그일라에서 피해 요새에도 있고 십 광야 산골에도 머무르되
하나님이 사울의 손에 넘기지 아니하신 것 처럼(삼상23:14)
내가 하나님께 다시 세밀히 물으며 주신 사명의 자리로 다시 나아가기를 원하시며 내 곁에 사울을 두신 것이겠죠?
우리 학교에서 3학년 때 처음 만난 영제라는 아이는
모둠 수업을 할 때, 모둠의 아이들이 자기 맘에 들지 않으면 일부러 틀린 활동을 하여 자기모둠을 자폭시킵니다.
아이들이 자기를 모둠장으로 뽑아주지 않으면 모둠활동을 못하게 방해합니다.
수업시간에 교사더러는 저만 바라보며 저하고만 얘기하기를 원하고, 반 아이들 전체를 놓고 설명을 시작하면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거나 큰소리로 수업과 관계되지 않는 다른 말을 떠들거나, 일부러 틀린 대답을 하여 방해를 합니다.
지금의 4학년 담임선생님에게는 대놓고
나는 선생님이 싫어요. 여자라서 싫어요. 체육시간에는 줄넘기를 해서 싫어요... 등등 마구잡이로 얘기도 한답니다.
늘 조용 조용 교양있게 웃으며 얘기하던 3학년 때의 처녀 선생님이나
여전히 애교와 교양이 넘치는 젊은 엄마 선생님인 4학년 선생님은 이제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고 합니다.
그저 어떻게 하든 조용히 1년을 마무리 하여 다음 학년으로 넘길 수 있는 날만 고대할 지경입니다.
음악시간,
그 나마 50명이 정원인 교실에서 30명의 3학년 아이들의 수업일 때는 견디어 줄만 했습니다.
300석인 시청각실에서 달랑 두 줄 30명 아이들이 수업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더욱 힘들어 졌습니다.
다른 아이들에게 방해가 될 때는 주의를 주고
다시 경고를 주고
앞 자리나 뒷자리로 옮겨 수업에 집중하도록 하지만
여전히 방해가 됩니다.
일반적인 말썽쟁이에 개구쟁이 아이들은
축구 경기의 심판 처럼 적용되는 엘로우 카드에도 금방 분위기를 달리합니다.
아이이기 때문에 곧 흐트러진다 할지라도 주의를 받으면 조심하는 노력이라도 합니다.
경고를 받아 퇴장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금방 반성을 하거나, 담임선생님을 통해 반성에 대한 마음을 다지고 전담선생님들께 미안한 마음을 얘기합니다.
아이들은 그러면서 자라는 거니까... 주의나 경고를 받아도 곧 열중하여 칭찬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제는 주의를 받아도, 경고를 받아도 아랑곳 않습니다.
선생님이 주의의 뜻으로 영제를 바라보면
오히려 학급 아이들 전체가 영제를 향해 그러지 말라며 아우성을 하는데
영제는 그 아이들을 향해서도 비웃음을 날리면서 대듭니다.
자기 말을 잘듣는 덩치 작은 아이들의 왕으로 군림하면서
몸으로 대들지 못하는 다른 아이들의 비난쯤은 신경도 쓰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어떻게 3학년 아이가 저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당황도 하였습니다.
분노가 치솟기도 했습니다.
요즘은 아동이 아무리 말썽을 부려도 교사가 어떠한 형태의 체벌도 못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일부러 더 비아냥거리고
교사가 어떠한 말실수를 할까 노리고 있다가 꼬투리를 잡는 모습을 보면서
저건 아이가 하는 일이 아니라 했습니다.
그래도 혹시 애정결핍일까 싶어
복도에서라도 만나 조용하게
"영제가 음악도 잘 하면서 수업시간에 다른 친구들을 너무 많이 방해해서 선생님은 속상하네... 다음에는 좀 잘해주면 기쁠텐데... 잘 할 수 있겠어?" 뭐 이런 식으로 관심을 보이며 얘기를 나누면
앞에서는 네~하고 대답하지만
돌아서면 선생님 뒤통수에 대고 메롱을 날렸다고 아이들이 이릅니다.
담임선생님이 상담해 본 결과
독자인 아이는 조부모 밑에서 오냐오냐 응석받이로 자랐고
지금도 부모는 아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들어준다며 민주적인 집안이라는 표현을 한답니다.
남을 배려할 줄 모르고 예의도 없고 사회성이 없어도 민주적이기만 하면 되는 건지...
내가 가진 지식과 경험과 능력으로는 정말 힘든 아이입니다.
일주일에 한 번 오는 두 시간이 짜증이 날 지경이고
나머지 그 이쁜 29명이 아니라면 수업도 못할 지경이었습니다.
다 내 지식으로만 대했던 까닭입니다.
매 순간 하나님께 묻지 않았습니다.
사소한 일이라 생각했고
내 경력으로는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이라 방심했던 까닭이기도 합니다.
내 삶의 생활예배를 드리지 못했음을 회개합니다.
지혜는 자기의 모든 자녀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을 것인데(35절)
하나님의 지혜로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이번 주에는 영제가 말썽을 부리면
먼저 데려다 손을 잡고 하나님께 묵상기도를 드리며 어떻게 할 것인지 묻겠습니다.
영제를 또 하나의 사울왕으로 내 곁에 붙여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