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같은 예배중독자였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모태에서부터 나는 하나님이 택하신 자녀였고
다윗과 밧세바의 찻 아이를 데려가신 것 처럼
착하디 착하고 순하디 순하고 똑똑했다던 장자를 열 한 살이나 되어 데려가신 뒤 태어난 딸인 나는
늘 심한 차별대우를 받고 자라면서도 그것이 차별대우인 줄도 몰랐고
방치되어 성장하면서도 그런 줄도 몰랐으며
그저 내가 먹고 싶은 콩 반쪽이 늘 교회로 내려가도 마땅히 그래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자랐습니다.
엘리 제사장과 그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 곁에서도 사무엘이 여호와 앞에서 자란 말씀을 들으며
홉니와 비느하스 같은 제사장들을 볼 때도 사무엘처럼 아무 말을 하지 않은 채 범죄의 현장에서 피했으며
아비의 벗은 몸을 보고도 침묵한 까닭은
노아의 아들 가나안과 같이 되지 아니하고 셈과 야벳같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기억하였던 까닭입니다.
그러나, 면전에서 다투지 않을 뿐이지
늘 집에서는 비판하고 정죄하는 어른들을 보고 자라며
내 맘속에서는 커다란 피판과 정죄의 악한 영이 자라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비판과 정죄의 마귀는 수하로 일곱 귀신을 불러들여 내 몸 속에서 집을 짓고 나를 주장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헛된 속임수에 나도 속고 남도 속이면서도
그것이 죄인줄도 몰랐고
기복신앙은 나쁘다고 말하며 스스로 쓸 것을 하나님께 구하지 않는 것이 마치 올바는 것인 양 교만하여 졌습니다.
자녀들 중에도 늘 다고 다고 하는 귀신보다는
묵묵히 곁에서 참고 살아가는 딸이 더욱 기특해 보일 것이라는 인정 중독병에 걸려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매사에 하나님께 묻는다고 기도하되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보다는 기도 중에 슬그머니 마귀가 끼워넣은 생각을 마치 하나님의 말씀인 양 믿게 되었고
마귀들의 #49489;팅을 하나님이 예비하심으로 믿고 죄악의 길로 빠져들었습니다.
그가 나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을 믿었고
문제가 생길 때면 내가 피하는 그곳이 지존자의 은밀한 곳이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이고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는 것이라 믿었습니다.
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 속에서도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진멸되지 아니할 것을 믿었기에 더욱 대담해 질 수 있었습니다.
나는 백부장 만큼은 못되어도 십부장의 믿음은 있노라 자신하며 교만하였습니다.
치료비가 없을 때는 키우는 강아지를 품고 피조물에 향하신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며 기도하여 병이 완쾌되는 기적도 여러번 경험했습니다.
아픈 이들을 위하여 밤을 새우며 기도하여
곧 죽어갈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은혜 또한 여러번 경헙했습니다.
사건을 통하여 내 죄가 보일 때마다 수없이 눈물로 회개하였고
육신이 연약하여 죄 가운데 있을 때
전권적으로 일으켜 주시는 예수님의 손을 붙잡고 일어선 적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내가 살아나곤 하였습니다.
넘어졌는 지도 모르고 넘어졌으며
하나님을 바라본다고 하면서도 마귀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다윗도 그토록 많이 넘어졌으며,
예수님과 3년을 같이 먹고 자고 마셨던 베드로도 그리 넘어졌는데,
하물며 나같이 연약한 인간이 자꾸만 넘어지는 것이 당연한데
마귀는 자꾸만 죄책감을 주고
포기하게 만들고
살 기력이 없을 거라, 안된다...며 저를 또다시 헛되게 속이려합니다.
마귀의 소리와 성령의 탄식 속에서 번뇌하다가
이제는 너무 무디어져서
돌이키기만 하면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실 것이라는 말씀이 가슴으로 오지 않습니다.
이미 죽어 관 속에 누워 있는 나를 우리들 교회로 부르셨으니
"일어나라'하시는 예수님의 명령을 듣고
일어나 앉고 말도 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마귀의 속임수에 두려워 떠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마귀가 두려워하는 사건이 되도록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를 위해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