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620(토) 눅 6:39:49 외식하는 자여
<39)맹인이 맹인을 인도할 수 있느냐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아니하겠느냐
@목자 직분 몇 년 동안 두 분 정도가 나로 인해 상처를 받아 목장을 나오지 않았다.
<41)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의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엊그제 회식의 불편함? 때로 터져 나오는 거침없는 EDPS, 자유연애에서 동성애적 발언 까지, 술 못 먹는 나는 술자리에 더하여, 참 편하지 않았다.
다들 휴머니스트들이지만 크리스챤은 아닌 동료들과의 직장생활, 조용히^^ 잘^^ 지내야겠다. 그런데 어렵다. 불편하고 어려운 내 마음의 들보?
일상 삶의 티, 없는 사람 어디 있겠나, 훅 불어내거나 물로 씻어내면 되는데 비해, 들보는 정말 하나님이 손 보시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
<45)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무심코 터져 나오는 말이 내 마음을 보여준다 하신다. 언젠가, 해외의 담당자와 통화 중에, 또 주점에서 옆자리 자회사 동료에게 뱉아냈던 거칠고 상스러운 말들, ‘개XX들, 다 XX 죽인다 그래’
내 속의 상처와 나 무시한다는 열등감의 벌거벗음?
<49)(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주추 없이 흙 위에 집 지은 사람과 같으니 탁류가 부딪치매 집이 곧 무너져 파괴됨이 심하니라
@신앙의 자랑 가운데 하나였던 십일조, 해외근무 초기 2년 동안 까맣게 잊었던 적이 있다.
탁류? 해외 주재원이라는 ‘허파에 바람’이 들어가고 주머니에 돈 더 들어오니? 잠재의식 속에 ‘이 기회에 돈 확실히 모아 놓자’ 라는 생각이 있었을까?
어찌 그럴 수 있나 의아할 정도로 십일조 자체를 잊어 먹었다. ‘인생이 아 이럴수도 있구나’
그렇게, ‘빠짐없는’ 내 자랑의 십일조 ‘집’이 무너졌다. 샬롬.